타고남과 길러짐 사이에서, 교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책 한 권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냈다

by ShionJins

3월 말,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았다.

억지로 움직이는 대신, 밀어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 중 하나가 게이오기주쿠대학 안도 주코 교수의 신작, 『교육은 유전을 이길 수 있는가?』(2026.3)였다. 일본에서 쌍둥이 연구의 일인자로 불리는 분. 전작 『운명을 뛰어넘는 일』(2023)에 이어, 이번엔 교육 현장을 향해 직접 말을 건네는 책이다.

솔직히 처음엔 가볍게 펼쳤다. 그런데 첫 장부터 멈칫했다.



"우리는 어느 쪽을 믿고 가르치고 있는가?"

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 질문 앞에 서본 적 있을 것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된다고 믿는가, 아니면 타고나는 게 있다고 믿는가. 대부분은 공식 석상에서 전자를 말하면서, 마음 어딘가에선 후자를 느낀다.

이 책은 그 불편한 간극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행동유전학이 수십 년간 쌓아온 증거는 명확하다. 지능 차이의 약 50%, 학업 성취도의 약 45%, 성격 특성의 약 40%가 유전 요인과 관련된다. 수백만 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폴리제닉 스코어(PGS) 연구는 가족 소득을 통제한 후에도 학력 차이를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의미한가?

여기서 책은 — 그리고 행동유전학은 — 중요한 전환을 제안한다.


유전은 운명이 아니라, 확률적 경향성이다.

유전은 결과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범위를 설정한다. 교육과 환경과 노력은 그 범위 안에서 위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같은 유전형을 가진 사람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형을 보인다 — 이것이 Reaction Range Model의 핵심이다.

더 흥미로운 건 유전×환경 상호작용(GxE)이다. Tucker-Drob & Bates(2016)의 연구가 보여주듯, 사회경제적으로 풍부한 환경일수록 유전적 잠재력이 더 크게 발현된다. 반대로 말하면, 교육 자원이 빈약한 환경에선 타고난 가능성조차 피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Bronfenbrenner & Ceci(1994)는 이를 근접 과정(proximal process)으로 설명했다. 교사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풍부한 학습 경험 — 바로 이것이 유전적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교사의 역할은 유전 앞에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교해진다.


그런데 지금은 AI 시대다.

이 논의가 2026년에 더 긴박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GenAI는 학습자를 개인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학습자 간 차이의 유전적 기반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설계된 개인화는, 사실 개인화가 아니다. 노력·환경·유전의 삼각 구도 없이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경로는 불완전하다.

더 위험한 건 능력주의의 가속이다. AI를 써도 못하면 네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함의가 슬그머니 스며들고 있다. Harden(2021)이 경고했듯, 유전적 운(genetic luck)을 무시하는 사회는 능력주의 신화를 더 잔인하게 영속시킨다.

폴리제닉 스코어와 AI가 만나는 지점도 심상치 않다. 학력을 유전적으로 예측하는 기술이 AI 기반 조기 선별과 트래킹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결정론적 활용과 가능성 확장적 활용 사이의 차이를 교사가 이해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AI가 콘텐츠와 평가를 맡는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접 과정을 설계하는 일. 학생의 현재 조건에서 최적의 경로를 함께 찾는 일. 유전적 운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것을 불평등의 정당화가 아닌 형평성 있는 자원 분배의 근거로 삼는 일. 이것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르치는 것이 언제나 옳은가, 라는 질문도 이 책은 비껴가지 않는다. Sisk et al.(2018)의 메타분석은 27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성장 마인드셋과 학업 성취의 전체 상관계수가 r=.09에 불과하다고 보고한다. 다만 학업 위험군과 저SES 학생에게는 효과가 유의미하게 컸다. "모든 학생에게 성장 마인드셋을"이 아니라, 맥락을 진단하고 차등 개입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전 결정론도 아니고, 교육 만능론도 아닌 —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교육이 있다.

몸이 아프길 잘했다 싶었다. 이런 책을 이런 속도로 읽게 되었으니.


참고

안도 주코 (2026). 교육은 유전을 이길 수 있는가? 게이오기주쿠대학출판회.

Harden, K. P. (2021). The Genetic Lotte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Sisk et al. (2018). Psychological Science, 29(4), 549–571.

Tucker-Drob, E. M., & Bates, T. C. (2016). Psychological Science, 27(2), 138–149.

Bronfenbrenner, U., & Ceci, S. J. (1994). Psychological Review, 101(4), 568–586.

매거진의 이전글삶에 쉼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