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은 언제 우리를 살리고, 언제 우리를 파괴하는가
무대 위에서 빛나던 그의 모습, 다양한 작품 속에서 보여준 섬세한 눈빛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문다. 우리는 그를 가슴에 새기며, 그의 삶을 기억할 것이다. 于朦胧(1988.05.16-2025.09.11), 당신의 짧았지만 빛나던 여정을 추모하며, 남은 우리들은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서로를 살리는 신념으로 살아가려 한다.
2025년 9월 11일, 중국 배우겸 가수였던 于朦胧(于朦胧, Yu Menglong, 위멍롱/우몽롱/우몽룽)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대중에게 충격을 안겼다. 공식적으로는 자살로 추정되었으나, 일부에서는 시기와 질투 등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요인을 배경으로 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사건의 진상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 곧 자유의지와 신념, 그리고 그것의 취약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글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28곡에서 제시되는 자유의지 개념을 토대로, 于朦胧의 죽음을 자살과 타살 두 가능성에서 각각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신념과 자유의지가 지니는 양가적 성격을 논의하고자 한다.
《신곡》 연옥편 제28곡에서 단테는 지상낙원(에덴동산)에 도달하여 마틸다(Matilda)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의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물을 흘리든, 눈빛을 잃든, 그것은 네 자유다. 그러나 그 의지를 거스르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너를 네 심신의 주인으로 삼아 왕관을 씌우리라.”
여기서 자유의지는 단순히 선택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적 기원에 바탕한 존엄성과 책임을 내포한다. 단테가 강조하는 자유의지는 ‘원하는 대로 행하는 자율’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향한 올바른 선택의 가능성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잘못 행사되거나 외부로부터 박탈될 때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다.
于朦胧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자유의지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자살로 볼 경우 이는 자유의지가 절망 속에서 자기 파괴적으로 오용된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자유의지의 행사처럼 보이나, 단테의 시선에서 본다면 그것은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를 삶과 선의 방향으로 활용하지 못한 왜곡된 결과이다.
타살로 볼 경우 이는 자유의지가 행사될 기회 자체가 박탈된 사례이다. 타인의 시기, 질투, 혹은 구조적 폭력에 의해 한 인간의 생명과 선택권이 강제로 끊긴 사건은, 자유의지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보장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 자유의지가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지를 드러낸다.
자유의지는 흔히 신념과 결합하여 이해된다. 그러나 신념은 양가적 성격을 지닌다.
신념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흔들리며 삶의 중심을 잃는다.
반대로 신념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칼이 되거나 타인을 억압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나친 자기 강박과 완고한 신념은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며, 반대로 타인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한 강직한 신념은 타살이나 폭력의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념은 고집이 아니라 유연함 속에서만 건강하게 작동한다.
이 점에서 단테의 가르침 ― “남의 눈짓이나 말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의지를 주인으로 삼아라” ― 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자유의지는 자기 확신과 결단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파괴적 집착이나 배타적 폭력이 되지 않도록 융화와 유연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于朦胧의 죽음은 자유의지와 신념의 이중적 성격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것이 자살이었다면, 자유의지가 절망 속에서 자기 파괴적으로 오용된 비극이고, 그것이 타살이었다면, 자유의지가 외부의 질투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박탈된 사례이다. 어느 경우든 우리는 자유의지가 존엄의 원천이자 동시에 취약성의 근거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강직한 신념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유연성 속에서만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되,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거나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늘 조율해야 한다.
于朦胧의 죽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의 신념은 지금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그것은 나를 지탱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와 타인을 파괴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강직함 속에 유연함을 품을 때, 인간은 비로소 단테가 말한 자유의지의 왕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