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되는 삶, 사회적 병리

by ShionJins

나는 본래 타인의 죽음에 담담한 편이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도 차분히 받아들이는 성향이었고, 슬픔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연예인의 죽음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타인인데도,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선 어떤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죽음은 곧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소비하는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이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구경거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이다. 연예인의 삶은 이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들은 무대 위 공연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조각, 사소한 언행, 사적인 관계까지 모두 스펙타클로 전환된다. 실제의 삶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다. 연예인은 결국 이미지로 살아가고, 이미지로 소멸하는 존재가 된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소비사회』에서 지적했듯, 현대인은 더 이상 사물 그 자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지닌 기호와 상징을 소비한다. 연예인은 가장 대표적인 기호다.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나 연기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소비하는 것은 웃음, 스타일, 연애, 스캔들, 심지어 고통까지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기호로 축약되어 유통되고, 죽음마저 또 다른 기호로 소비된다.


여기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권력 분석을 덧붙일 수 있다. 연예인은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팬과 언론, 대중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규율되고 감시되는 존재다. 말투, 표정, 몸짓, 사생활까지 감시와 규제의 대상이 된다. 연예인의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결국 타인의 시선에 의해 통제되는 생명 정치적 존재로 전락한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성과 주체”라 부르며,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여 성과를 창출하다 결국 스스로를 소진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연예인은 이 개념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빛나야 하고, 더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한없이 착취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 착취는 결국 버티지 못할 지점에 이르러 파국으로 귀결된다.


이 모든 과정의 끝에서 연예인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소비된다. 확인되지 않은 기사, 자극적인 추측, 음모론적 소문이 난무한다. 고인의 삶과 죽음은 다시 이미지와 기호로 가공되어 유통된다. 비극조차 하나의 구경거리, 또 다른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삶과 죽음에는 놀라울 만큼 엄격하다. 무슨 근거에서인지 아직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타인의 선택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이 너그럽다. 타인의 비극에는 가차 없으면서, 자기 삶의 피로와 착취에는 무심하거나 관대하다.


따라서 연예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스펙타클의 사회, 기호를 소비하는 사회, 감시와 규율의 사회, 성과를 강요하는 사회가 교차하며 생산해낸 구조적 비극이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이미 그러한 구조 속에서 소비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결국 남는 물음은 하나다.


우리는 정말 타인의 삶을 평가할 만큼 자유로운가,
아니면 이미 거짓 뉴스와 소비 구조 속에서 함께 소모되는 존재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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