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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an 05. 2019

안녕, 엄마! 딸들이 박수를 쳤다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0

사람 10     

                   안녕. 엄마! 딸들이 박수를 쳤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나도 당황스럽지 않았다.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세 딸이 방금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앞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누구 하나 우는 사람은 없다. 애통한 눈빛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일 년 넘게 많이도 봐온 희경 할머니 딸들이지만, 오늘처럼 밝은 표정을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웃으며 ‘죽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매들끼리 끌어안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방금 동굴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처럼 환희에 찬 눈빛으로!     


반가운 사람을 만난 몸짓이다. 죽은 어머니 뺨을 만지고 손도 만지고 입도 맞춘다.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어느 때보다 정성스러운 손길이다. 무엇보다 어느 때보다 편해 보인다.     


그래서 더 슬픈 죽음 풍경이다!   
   

©픽사베이


길었던 배웅 시간에 이미 아플 대로 아팠고,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 울음을 다 쏟은 가족들에게 ‘위로’와 ‘평안’과 ‘기도’를 선물로 남기고 떠나는 요양병원 중환자 병동의 환자들.      


오랜 배웅 시간으로 퀭하게 뚫린 가슴이지만 ‘그만 아파서 다행이다. 이젠 아프지 않을 거니 정말 다행이다.’ 하며 안도와 평안을 웃음으로 보여주는 가족들.     


그래서 남들이 대신 울게 되는 죽음 풍경이다!      


<사망 선고>와 함께 들려오는 보호자들의 안도의 숨소리가 병실을 메우고 병동을 채운다. 많이 아팠던 환자일수록, 멈춰지지 않는 통증으로 언제나 죽음을 붙들어 쥐고 있었던 환자일수록, 보호자들은 울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운다.      

얼마나 외로움으로 울부짖었는지, 욕창 드레싱을 할 때 뼈가 드러나고 살이 썩는 아픔에 얼마나 그 좁은 침대에서도 피하려고 몸을 움츠렸는지, 마지막 소변 한 방울 나오지 않게 모든 생리 기관이 멈췄을 땐 풍선 같이 부푼 살에서 누르면 삐져나오던 몸 안의 물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보고 느꼈던 우리가 운다.      


죽은 환자가 맞게 된 평안보다는 그가 겪었던 시간이 불쌍해서 운다.      

가족은 떠난 이의 편안한 미래를 생각하며 웃는데, 남인 우리들은 떠난 이의 과거를 생각하며 운다. 우리들의 기억 때문에 운다.      


그의 상처를 직접 보고, 그의 울음을 직접 듣고, 그의 냄새를 직접 맡고, 때론 그런 그에게 진저리도 쳤던 우리들의 생생한 감정 때문에 운다.      


오래 앓았던 환자일수록 임종 며칠 전부터는 체온계에 LOW 가 뜨며 체온도 잡히지 않는다. 어쩌다 잡혀도 산 사람의 체온이라고 할 수 없다. 삼십사 도, 조금 오르면 삼십사 도 이 부... 얼음장 같던 그의 피부의 감촉이 너무 생생해 운다.     


들것이 들어오고 희경 할머니가 시트에 덮인 채 누인다. 위에서부터 등으로 바싹 조여 덮은 몸피가 너무, 작다.     


“엄마, 안녕! 이제 안 아픈 데로 가는 거야. 알지? 축하해...”     


들것을 따라 나가며 딸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아! 딸들이 울고 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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