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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an 07. 2019

오늘도 나는 사람을 묶었습니다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1

사람 11     

                     

                 오늘도 나는 사람을 묶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401호 병실에서 나온 요양보호사가 찢겨서 너덜너덜해진 기저귀를 들고 간호부 쪽으로 왔다.      


“이거 좀 보세요. 기저귀만 뜯으면 갈아주면 되지만, 뜯어서 손으로 변을 주물러 침대고 이불, 베개까지 엉망으로 다 묻혀 놨어요.”     


크고 넓은 성인 기저귀가 헝클어진 무명실처럼 갈기갈기 찢겨 있다. 기저귀를 내보이는 요양보호사의 손가락과 손바닥에 반점처럼 돋아나 있는 짓이겨진 변이 보인다.     


“게다가 오늘은 콧줄도 두 번이나 잡아당겨 뺐잖아요. 그제 하루 좀 빤하시더니 어제부턴 종일 있는 힘껏 침대 사이드 레일을 흔들어대고, 옆에 가기만 하면 발로 차서 기저귀도 갈 수가 없어요. 저도 벌써 두 번이나 차였어요.”     


그러니 보호자에게 동의서까지 다 받아 놓은 그것을 하라고 요양보호사 김영미 여사가 말하고 있다. 다른 동료 보호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자신이 겪은 일을 쏟아낸다.     


“우리야 직업이니까 맞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김재민 환자는 침대를 두드리다가 아무도 안 오면 그때부터는 자신을 막 두들겨 팬다고요. 어디 패기만 해요? 손톱을 있는 대로 세워 자기 몸을 할퀴어 등이며 배, 팔다리가 유리로 긁어놓은 것 같아요.”     


“보호자가 보면 아무리 자기 환자 저런 상태를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한테 뭐라 그러고 싶지 않겠어요? 복수가 차서 산처럼 부푼 배가 온통 손톱자국으로 피딱지 범벅이잖아요.”     


“더 잘 아시겠지만 환자를 위해서라도 이젠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작심하고 하는 말이다. 그녀의 작심에 거절할 명분도, 반대할 이유도 없다. 같은 병동에 있는데 우리가 모를 리 있는가. 너무 잘 안다.     


김재민, 나이 마흔아홉, 치매. 말기 간암. 임종을 위해 요양병원으로 이송. 발병 전 전기 설비 기사, 미혼. 가족으로는 낙상 후 하반신 마비로 8년째 누워 있는 아버지와 오 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 역시 아직 미혼인 쉰두 살 누나. 미용실 경영, 김재민의 보호자. RT(신체 보호 억제대) 동의, DNR(위급 시 심폐 소생술 금지) 동의...     

©픽사베이


너무 젊은 사람이라 그가 입원할 때부터 간호부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간암 말기에다 치매라니, 게다가 잔여 수명 삼 개월 예상. 말기 암으로 잔여 수명 일 개월을 진단받고 들어오는 환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칠십이 넘은 고령이었다.      


죽음이 안타깝지 않고 죽는 사람이 불쌍하지 않을 수 있는가. 늙었다고, 그래서 살 만큼 살았다고 여행 보내듯 손 흔들며 보내지 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픔과 애통함은 분명히 결이 달랐다.      


김재민. 그는 입원할 때부터 애통함을 우리 모두에게 안기며 들어온 환자였다.      

“치매인 엄마를 닮았을까요? 간암 선고를 받은 마흔일곱 되던 해부터 이상해졌어요. 치매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암 선고에 충격을 받아서 잠시 그런 거겠지?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치매가 맞더라고요. 묶어야 할 거예요. 풀어놓으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으니... 대학병원 있을 때도 그랬는걸요.... 그리고, 갈 때는, 그냥 가게 두세요. 어차피 선고받은 아인데 더 이상 갈비뼈 하나라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입원 수속을 마친 재민 씨 누나가 간호사가 설명하기도 전에 미리 말했다. 오랜 보호자 역할로 병원을 드나들며 그녀는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가장 설명하기 힘든 만큼 받기도 힘든 두 가지가 RT(신체 보호 억제대) 동의, DNR(위급 시 심폐 소생술 금지) 동의다. 운을 뗐다가 화들짝 놀라 우는 보호자나 거칠게 화를 내는 보호자 앞에서 죄인처럼 쩔쩔맨 적 한두 번이 아니라고 간호사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차트를 뒤적이는 수 간호사의 얼굴빛이 어둡다.      


“저것 봐요. 수액 걸이를 흔들더니 기어코 잡아 뺐네요. 저러다 옆 침대로 던질까 봐 걱정돼요.”     

요양보호사가 401호 병실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선생님, 가서 RT 좀 해 주세요. 양쪽 팔과 다리, 다 묶으세요. 침대 다리를 걸어 단단히 매야 할 거예요. 재민 씨가 워낙 힘이 세서 약하게 하면 금방 풀어지는 거 아시죠? 혼자서는 못할 거예요. 보호사 님, 선생님 도와 드리세요.”  

    

©픽사베이


기어코 가장 하기 싫은 지시가 떨어진다.      


똑 부러지는 음성과는 달리 한숨을 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수간호사를 뒤로 하고 나는 401호 병실로 걸어간다. 손바닥 쪽으로 마분지를 깔아놓은 것 같은 둔탁한 장갑과 긴 끈을 들고.      


재민 씨가 묶인다. 내가 사람을 묶는다.      


발버둥 치는 재민 씨에게 밀려 멈칫하다가, 무심코 옆 침대 윤호 할아버지에게 덜컥 시선이 붙들린다. 왼팔이 묶인 윤호 할아버지가 웃고 있다. 시간에 맞춰 풀어드리긴 하지만 열흘 전에 내가 묶은 팔이다.      


애써 외면해보지만 자꾸 팔에 힘이 빠진다. 내가 사람을 도우려고 이 일을 하나! 사람을 괴롭히려고 이 짓을 하나! 회의가 힘이 빠진 팔을 거쳐 온몸으로 몰려온다.      

©픽사베이


묶이지 않으려고 재민 씨가 발버둥 친다.      


“제발, 제발요. 이래야 재민 씨가 덜 다친다고요. 이걸 해야 모두가 안전하다고요. 그러게, 왜 자꾸 정신 줄 놓느냐고요. 아직, 아직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묶여도 되잖아요. 이건 재민 씨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우리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이라고요.”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이미 묶인 오른팔을 바라보는 재민 씨의 눈빛이 조용하다.     


묶인 건 재민 씨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묶은 건가? 또 한참 고른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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