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2
사람 12
오늘도 그녀가 묻는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깡마른 두 팔이 치켜 올라간 환의 아래로 하얗게 드러나 있다. 허벅지부터 양 바깥쪽으로 벌어져 무릎 아래서 다시 모아지다가 합쳐진 두 발, 시트로 몸을 덮고 있어도 두 다리 사이로 둥근 공 모양의 공간이 보인다.
그녀가 놓치고 싶지 않은 ‘그녀의 우주’다. 절대로 놓을 리 없는 ‘그녀의 추억’이다.
귀애 씨. 서른세 살, 왼쪽 팔목에 우둘투둘하게 팔찌 모양으로 돌출된 흉터가 그녀의 미소만큼이나 선명하다. 십 개월 전 원인 불명의 인지장애로 생활이 불가능해 가족들에 의해 입원했다.
처음엔 일반 병동으로 입원했으나 인지 있는 분들이 많은 병동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주는 피해가 많다는 이유로 며칠도 안 돼 중환자 병동으로 전동 된 환자였다. 중환자 병동은 인지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개인의 소란 피해가 직접적으로 다른 환자들과 연결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중환자 병동은 임종이 임박한 중한 환자들과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 생의 마지막 정거장이다.
‘미리 연옥을 보는 것 같아. 숨은 쉬어도 몸은 이미 죽어 있는 사람들, 문만 열면 화창한 날씨와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행렬과 수많은 차들, 웃음과 사랑과 때론 싸움마저도 살아 펄펄 뛰는 건강한 세상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아? 벌써 죽어 지금 연옥에 와 있는 건 아닐까?’
요양병원 근무 삼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은 꼭 했던 생각이다. 요양보호사들의 기저귀 케어 시간이 되면 각 병실의 창문을 죄다 열어도 병동 전체를 싸고도는 배설물 냄새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당연하게 하는 생리작용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욕창 드레싱 시간이 되면 저절로 기도가 터져 나왔다. 오, 하느님! 잠시만, 잠시만, 제 코를 막아주세요. 살이 썩고 뼈가 파이는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표현 불가의 냄새와 분비물은 세상에서 제일 더럽다고 하는 똥조차 아무렇지 않게 만들었다.
거기다 짐승의 소리 같은 울부짖음, 밤에도 잠들지 않는 환자들의 멍한 눈, 쓰러진 고목처럼 쭈글쭈글하게 말라 굳은 몸, 연민과 함께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당겨진 불안감으로 미리 공포를 보는 곳. 요양병원 중환자 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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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환자들과 미리 죽음을 보는 직원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곳. 그만큼 환자와 직원의 시간은 교차되었다. 환자들은 살아 있는데, 직원들은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는 곳! 환자들은 아픈 것도 모르는데 직원들은 아파서 매일 앓는 느낌으로 불안한 곳!
우리가 아픈 부모 형제를 모셔놓고 적지 않은 병원비 충당을 하는 것만으로 자식과 형제로서 양심의 부채를 덜어내는 곳.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모실 수 없으니 당신들이 내 부모, 내 형제처럼 모셔 달라고, 이곳은 병원이며 당신들은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책임을 다할 거고, 그만큼 우리는 효도와 우애를 다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자기들의 삶으로 돌아가는 곳! 그곳이 요양병원이다!
귀애 씨! 결혼은 했으나 이혼, 친정에서 어머니와 살다가 잦은 자해와 시도 때도 없는 욕설과 폭력으로 거의 잡혀오다시피 한 여자였다.
“정신병원보다는 여기가 나을 것 같아서...! 아직 젊은데 혹시 저러다 나으면 정신병원 전력이 걸림돌이 될까 봐. 특별한 병도 없대요. 그런데 도통 일어설 생각도 않고 누워만 있었어요. 그래서 저렇게 다리가 굳어버린 거예요. 그냥 맡아만 주세요. 여기서도 쫓겨나면 내가 먼저 죽어요.”
노모의 목소리가 자꾸 작아진다. 작아지는 노모의 목소리를 따라 우리들의 귀가 커진다. 그러면서 노모의 얼굴을 바라본다. 눈물인지 진물인지 모를 액체가 말라붙어 있는 눈가가 새까맣다.
그냥 맡아만 주세요!
여기서도 쫓겨나면 내가 먼저 죽어요!
©픽사베이
지금도 할머니는 산 사람 같지 않다고,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에 어떻게 그런 그늘이 질 수 있냐고, 할 수도 없는 말들이 또 쌓여 답답하다.
귀애 씨는 하루 종일, 정말 잘 때를 빼곤 하루 종일 물었다.
“선생님, 나 예뻐요? 엄청 예쁘죠?”
“그래요, 귀애 씨. 정말 예뻐요. 무지 예뻐요. 우리 병원에서 최고 미인이에요.”
“고마워요.”
처음엔 저렇게 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왜 다들 못 견뎌하나 의아했다. 그런데 그건 그녀의 말에 즉각 대답을 해줄 때뿐이었다. 다들 자신들의 업무로 못 듣거나 듣고도 같은 대답이 지겨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변했다.
입술에 칼을 물고 있는 것처럼 앙칼지고, 독기를 품은 목소리가 병동을 울렸다.
“예쁘다고 말해. 무지 예쁘다고 말하라고. 왜 안 해? 이러고 있으니까 그저 그런 여자로 보여? 말해. 나 예쁘잖아? 당신들도 샘나잖아? 그래서 대답하기 싫은 거잖아?”
한 달에 한 번쯤 드나드는 귀애 씨의 언니들이 온 날도 병동은 귀애 씨가 뿜는 앙칼진 목소리로 자욱했다.
“예뻤어요. 대학 다닐 땐 과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뽑혀 왕관도 썼던 얘예요. 남자들이 문제였어요. 예쁜 얘니까 이놈 저놈 들러붙는 게 셀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얘만 홀려 놓곤 다 버리더라고요. 무슨 이윤지는 우리도 몰라요. 만나고 채이고, 만나고 채이고를 반복하더니 저렇게 됐어요.”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예뻤던 여자가 그 “예쁨” 때문에, 상처 받고 훼손되었다는 사실이 그냥 무조건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귀애 씨가 있는 405호 병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귀애 씨! 예뻐요. 진짜 예뻐요. 보면 볼수록 더 예뻐요. 오늘이 어제보다 더 예쁘다고요.”
지나가던 요양보호사들과 간호사가 거든다. 누구 하나 찌푸린 인상이 없다.
“그럼 얼마나 예쁜데, 우리 귀애 씨, 살결도 희고 목도 길어서 정말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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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애 씨가 조용해진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름다운 단어를 귀애 씨에게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