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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an 07. 2019

엄마! 우리 아가! 아파도 죽지 마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3

사람 13     

                     엄마! 우리 아가! 아파도 죽지 마.      


뭐 저렇게 버릇없는 딸이 다 있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올 때마다 화장품 케이스를 들고 와 누워 있는 엄마 얼굴에 색조화장까지 해대는 딸의 모습에 처음엔 화도 났다.      


“에구, 우리 아가. 오늘은 기분이 어때? 좋다고? 그럼, 그래야지. 아프다고? 그래도 참아. 알았지? 아파도, 우리 아가, 가면 안 돼. 내가 안 보낼 거야. 내 허락 없이는 우리 아가, 여기 내 곁에 있어야 돼. 한 발자국도 나한테서 멀어지면 안 돼. 네.. 하고 대답해야지. 네, 해 봐. 네, 대답하라고.”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기어 다니는 아기를 다루는 엄마처럼 따듯하고 다정하며 때론 엄하게도 들리는 혜숙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주일 전에 입원한 김상희 할머니의 딸이다.      


눈썹은 물론 아이라인까지 두 모녀는 똑같이 문신을 했다. 검은색 선이 선명하게 그려진 눈으로 할머니가 딸을 본다. 누구냐고 묻는 눈빛이다. 검은색 선이 할머니보다 두 배는 짙게 그려진 눈으로 혜숙 씨가 어머니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맞춘다. 말이 이어진다.     


“저승사자? 웃기지 마. 내가 저승사자야. 그러니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제 아무리 무서운 저승사자가 와도 엄마는 못 떠나. 이렇게 아기로 만들어 놓고 내가 키울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엄마를 데려간다고? 우리 아가, 또 화장하자. 아무리 고화질 사진을 들고 저승사자가 찾아와도 절대 못 찾도록. 오늘은 요즘 유행하는 주황으로 눈 화장해줄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던 순간이었다. 폐암 3기, 혼수와 반혼수를 오가고 있는 김상희 할머니의 움푹 꺼진 볼에서 이리저리 밀리고 있는 파운데이션이 건너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배 같다.      

©픽사베이


건너갈까 감은 눈으로 흔들리다가도 딸이 아이쉐도우를 바르면 다시 열리는 할머니의 흐린 동공, 더는 못 견디겠다고 발을 뗐다가도 루주를 발라주는 딸의 손길에 다시 터져 나오는 숨, 아가 아가 우리 아가... 딸이 부르는 소리는 그렇게 할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저런 일도 있네요. 아직도 저렇게 부모를 못 보내는 자식이 있긴 하네요.”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모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자식이 저러는데, 저렇게 기를 쓰고 잡고 있는데 어떻게 가요? 천지신명과 맞짱을 떠서라도 명을 애원하지 나 아프다고 어떻게 가겠다고 나설 수 있겠어요?”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환자가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 이상일 거라고 간호사들이 말했다. 그래서 붙잡는 게 옳지 않다는 말이었다.      


“기적은 사방에서 자주도 일어나던데... 우리도 그 목격자가 될 수 있으면... 평생 병원에서 일했는데 그런 호사쯤은 일어나 줘야 되는 거 아닌가?”     


간호사들이 쓸쓸하게 웃는다. 그래, 정말 쓸쓸하게 웃는다.      

상희 할머니의 병실에서 들려오는 혜숙 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아기... 눈 떠. 눈 감지 말라고. 나 화낸다? 착하지? 그래그래, 봐. 눈 뜨니까 얼마나 예뻐? 주황 쉐도우가 정말 어울려. 볼래? 자, 거울 봐. 엄마 같지 않지? 죽은 아버지도 엄마 몰라보겠지? 암, 당연히 저승사자도 그냥 갈 거야.”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화살처럼 빠르게 하느님께 속삭여진다.      


‘하느님, 저 딸이 당신도 못 알아보도록 상희 할머니에게 화장하는 거 보세요.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할머니에게 시간을 주세요.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 끌어안고 버둥거리는 혜숙 씨의 저 시간을 모른다 하지 마세요. 아기가 된 상희 할머니가 엄마가 된 딸을 울게 하지 말아 주세요.’     


무거운 화장 케이스를 들고 혜숙 씨가 병실을 나온다.     


“내일 제가 올 때까지 우리 엄마 얼굴 닦이지 말아 주세요. 제가 와서 닦일게요. 절대 세수시키면 안 돼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신발을 신던 혜숙 씨가 고함을 지르며 나간다.     


“우리 아가, 엄마 말 잘 듣지? 엄마 절대 어디 가지 말라고 말했다? 아파도 참아. 아프고 나면 커. 알았지?”     

쓰라린 속이 기어코 뭉치는지 위가 아프다.     

©픽사베이 


나는 엄마를 얼마나 붙잡았을까? 우리 엄마는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엄마처럼 느껴진 적 있었을까? 우리 엄마는 얼마나 아파서 그렇게 가버렸을까? 내가 붙잡는 힘이 약해서 혹시, 내가 가라고 허락했다고 믿은 건 아닐까?      
아... 엄마...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펑펑 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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