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 전송- 12
눈 내린 다음 날 새벽길을 걷는다. 체감 온도 영하 십팔 도라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바짝 조여 두 번 감은 모직 머플러를 냉기로 풀풀 날리게 한다. 해가 뜨기 전의 세상, 아직은 반달도 되지 못한 여윈 초승달이 냉기에 한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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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젯밤에 멈춘 눈은 더 이상 설국을 꿈꾸게도, 부스스 살아나던 그리움이며 소망 같은 것에 숨을 멈추게도 하지 못한다. 춥고, 미끄럽고, 누군가가 앞서 지나간 발자국으로 비뚤비뚤 어지럽다. 먼지가 파고들어 속살까지 휘저어 놓은 눈이 땅에 주저앉아 있는 눈길을 나는 그렇게 걷는다. 새벽인데도 세상이 깨끗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는 세상에 나도 내 발자국을 남긴다.
눈 때문이다. 잠시 다녀간, 그래서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사방에 무질서하게 흔적만 내비치고 있는 눈 때문이다. 분명 왔다 간 것이 분명하다. 무심한 눈길도 박히지 않는 구석에서 흔적을 지우는 시간을 기다리며 쌓여 있는 희뿌연 더미, 눈은 먼지 옷을 입고 바람 채찍을 맞으며 세상 다시없는 초라함으로 다 땐 연탄보다도 더럽게 녹는다. 녹지도 못하는 땅에서는 그대로 울퉁불퉁하게 얼어붙는다.
세상 최고의 순결과 천상의 성스러움을 화관처럼 쓰고 있는 ‘눈’이라는 의미가 살아있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다. 꿈인 줄 알면서도 행복을 주문처럼 외우던 따뜻한 꿈속 기억처럼! 그러나 꿈은 꿈이다. 반드시 깬다. 꿈에서 천 년을 살았어도 현실에선 기껏해야 하룻밤, 수면제로 억지로 붙들어 맨 대도 이틀을 줄곧 잘 수는 없다.
눈이라는 물질만 이럴까? 세상을 덮을 듯 우람하게 내리거나, 머리카락 한 올 겨우 건들 얕은 숨처럼 내리거나, 결국은 질척거리며 녹거나 덕지 낀 더러운 얼음으로 뒹굴다 폐탄광처럼 스러져 갈 눈만 이럴까?
어쩌면 사람도, 사람의 시간도, 영혼까지 움켜쥐었다 믿었던 사랑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오래전 읽은 책 중에 서양화가 황주리의 산문집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가 있다. 이십 년도 넘는 세월 저편에서 읽은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건 제목 때문이다. 오늘 눈 내린 새벽길을 걷는데 그 제목이 달빛을 따라 눈길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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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눈과 같지 않은가? 눈이 내리기를 멈추면 아무리 백설탕처럼 세상을 하얗게 덮었어도 그 모습 결국 훼손되고 말 듯이, 사랑도 삶도 진행을 멈추면 그 끝 모습에 누가 아름답다는 상찬을 바칠 수 있는가. 사랑하다 헤어지는데, 살다가 죽는데 말이다.
장갑 낀 손을 깍지를 껴서 가슴에 대본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목에 힘을 주고 걸은 탓인지 두툼한 겉옷 위로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내리고 있는 눈이라는 생각이 동트는 햇살과 교차한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때문에 내 시간은 아직 진행 중이고, 따라서 나는 아직 아름답다는 생각이 덤으로 따라온다.
눈이 멈춘 새벽길에서 멈추지 않고 뛰고 있는 내 시간을 만난 오늘, 정오쯤에 속초 바닷가로 홀로 여행을 떠난 후배가 보내온 카톡을 받았다. 총 네 개의 카톡엔 그녀가 보고 있는 바다와 파도, 그것들을 뒤에 거느린 후배의 웃는 모습, 그리고 ‘심심하고 좋네요.’라는 짧은 메시지가 있었다.
‘너는 내리는 눈 같구나... 살아가고 있구나... 아름답구나...’
나는 저녁녘에야 이런 답장을 보냈다.
“좋았으리라 생각하다. 혼자 보는 바다, 혼자 맞는 바람, 혼자 겪는 시간... 엄두는 못 내지만 부럽구나. 하지만 너는 오늘 진짜 혼자였을까? 오늘 나는 네가 보는 바다를 봤고, 네가 맞는 바람을 맞았으며, 네가 겪는 시간을 겪었다. 이런 동행도 있다는 걸 체감한 하루였구나. 덕분에... 잘 쉬렴. 넌 분명히 좋은 여행을 했다. 덕분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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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눈의 흔적이 절대로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아직도 곳곳에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간은 아직 뛰고 있고 살아 있다. 봄엔 나도 ‘내리러’ 갈 것이다.
눈은 '내릴 때' 아름답기 때문이다. 삶도 '살아 있을 때' 아름답다.
*논객닷컴 게재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