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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Apr 22. 2019

또, 꽃이 피네

            

문득, 보았다. 


목련, 개나리, 아카시아, 탱탱하게 부푼 나뭇잎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날이었고 그래서 대낮인데도 하늘은 눅눅한 이불보다도 더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날이었다.      


세상은 돌아선 연인들의 등처럼 캄캄했고 적요했고 텅 빈 듯했다.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날이었다. 가고 있는 시간도 오고 있는 시간도 느껴지지 않는 홀로 서 있는 십 차선 횡단보도 앞처럼 그냥 어딘가에 붙박힌 것 같던 날이었다.      


그때 보았다. 이미 만개한 세상! 


©픽사베이


30촉짜리 백열등 수만 개가 한꺼번에 점화되듯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한 번도 거짓을 말하거나 남 탓해보지 않은 어린아이 입술처럼 맑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생명. 

그 환하고 아찔한 발견의 순간에 때마침 후드득, 한 계절을 미리 당겨 온 듯한 소나기가 내렸다. 아파트 앞 뒤 동이 빗줄기에 가려 긴 직사각형 실루엣으로 흐려져 갔다. 그 사이를 신생아의 젖 냄새 같은 꽃향기가 백 가지 색깔로 번져가고 있었다.      


“또... ,”   

“또... ,”     


봄 소나기에 젖는 세상에서 “또”라는 외마디 부사어가 하루 종일 온몸의 핏줄을 타고 돌아다녔다. 뒤로 한참이나 다음 말이 빗줄기에 젖은 땅 속에서 맴돌았다. 날숨이 내쉬어지지 않는 시간, 내 집 거실 창 앞에서 나는 그날 “또”라는 단어를 들숨과 함께 거듭거듭 들이키고서야 다음 말을 토할 수 있었다. 비로소 깊게 날숨이 쉬어졌다.      

“또... , 꽃이 피네.”

“또... , 잎이 나네 ‘”

“또... , 사네.”     


또, 꽃이 핀 것이다. 또, 봄이 온 것이다. 또, 사는 것이다.  


©픽사베이



쉰 번도 훌쩍 넘게 보아 온 세상의 사계가 왜 그렇게 충격의 맞닥뜨림으로 내게 왔을까? 피고 지고 다시 피는 게 꽃의 순환성이고, 물오르고 말라가다 다시 숨을 일으키는 게 나무의 질서이며, 그것이 세상의 무한한 영속성인데 나는 왜 놀랐을까?     


그것은 재생과 순환의 의미를 무한대로 가진 “또”라는 단음절 때문이었다. 늘 써 온 단어였지만, 한 번도 주제어가 되어 보지 못한 채 상황을 강조하거나 거듭되는 상황을 나타낼 때 그냥 습관처럼 내뱉어지던 단어.     

그런데 그날, 하늘은 캄캄하고 비는 내리는데, 발바닥부터 서서히 그리고 저릿하게  치밀어 오르던 무엇, 그것은 감사와 감동과 바로 뒤를 잇던 깊은 슬픔이었다.     


“또”를 말할 수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다시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상황 속에 내가 속해 있다는 현실감이었다. 되풀이되는 상황 안에 내 삶 또한 되풀이되고 있음을 나는 그날 그 짧은 “또”를 거푸 발음하며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세상 속에서의 어머니의 부재가 한꺼번에 깨달아졌다. 사지에 물주머니를 찬 것처럼 온몸이 출렁거렸다. 

“또”를 말할 수 없는 세상 저편으로 훌쩍 건너가 버린 어머니...     



왈칵! 울음이 터졌다. 


‘생명’ 이린 단어가 떠올랐다.

생명! 生命! 그것은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라던 어느 소설가의 글이 바로 지금 읽은 것처럼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살아 있으니까 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으니까 어제 보았던 것을 또, 볼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으니까 어제 겪었던 것을 또, 겪게 되는 것이다.     


또, 꽃이 핀다고

또, 잎이 난다고

그렇게 

또, 산다고     


아직 살아 있어야 하는 명령이 거두어지지 않은 이 시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감사한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세 번째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다. 


또, 카네이션을 사서 또, 가슴에 꽂아드리며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버이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어버이 날> 노래 가사를 기억에서 호출할 어머니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 

좌우 사방 세상 모든 것이 또, 또, 또... 되풀이되며 이어지는데...      


벌써 또, 해가 비친다


언젠가 내 아들도 “또”라는 외마디 단어를 붙들고 부모 없는 어버이날이 지나가고 있는 즈음에 또, 꽃을 보리라. 또, 잎을 보리라. 또, 그렇게 살아가리라.     


©픽사베이


“또”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 더 많이, 더 뜨겁게, 더 귀하게, 살고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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