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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Nov 23. 2019

어머니 추도사


(할머니께서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지난 목요일에 선종하셨습니다. 아래의 글은 엄마와 코레스 이모, 조이 이모, 사촌 예슬이와 올케가 함께 쓴 장례 미사 추도사입니다. 할머니께서 선종하시던 때에 성당 하늘에 뜬 무지개처럼 할머니께서 영원한 안식을 평안히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이 주일이라 10시 미사에
다녀왔다는데 나의 기억력은 백지다.
남편 바오로가 미사에 갔다 왔다 하니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이제 난 완전 바보 멍텅구리가 되었다.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만 잘 하자.

주님 말씀 안에서 회개하고
용서하고 바르게 살자.
천국에는 꼭 가야 하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쓰시던
어머니의 일기 내용입니다.  

치매와 투쟁하는 와중에도
천국행만을 바라셨던
어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

어머니는 1934년 수원에서

4남 2녀의 차녀로 태어나셨습니다.

수원여고를 졸업하신 어머니는
여주군 강천면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셨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몇 년 후 서울 근교로 이사하신
어머니는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대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때부터 여덟아홉 식구의 부양을
책임지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교육자로 일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으신 어머니는
특히 교육 부문 봉사에 헌신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여주군 강천면
부친의 고향에 고등학교 부지로
땅 6천 평을 서슴없이 기부하셨고,

서점을 운영하시던 시기에는
매년 학기 초에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전과목 참고서를 보내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매달 십 분의 일은 주님 몫으로
각종 후원금도 내셨습니다.

지난 봄.
생신을 맞으신 어머니는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잘 자라주어 난 행복해.
걱정을 끼치는 자식이 한 명도 없고,
사위들도 며느리도 다 잘 들어왔지.
손주들도 다 잘 자라주었어.
다들 고마워.
난 참 축복 많이 받은 사람이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건강을 지키며
남은 여생을 즐기실 나이에  
어머니를 찾아온 무서운 병 치매.

어머니는 치매를 이겨보려고
모든 노력을 하셨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시성 절차를 밟고 있는
끼아라 루빅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성경 말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무’만이
하늘나라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순수한 영, 즉 아무것도 아닌 자들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루시아는
치매라는 몹쓸 병으로  
오랜 기간을 지나며 육신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가셨습니다.

삶이 쌓은 모든 공로와 기억을 잊고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
‘무’가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일기에
이제 남은 유일한 희망은
천국행이라고 쓰셨는데,

이제 그리도 갈망하던 성부의 품에
이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과
모든 성인 성녀와 함께
천국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길
온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어머니 저희에게 행복한 오늘을,
믿음의 삶을 보여주심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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