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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Jul 19. 2023

아버지


벌써 5월이다.

예년에는 5월 초에도 반팔도 입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봄날씨가 좀 변덕스럽긴 하다.


아버지는 보통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목욕재계를 하시고 신문도 보시고 성경도 읽으시다가

7시쯤 집 앞 공원으로 운동을 하러 가신다.


꼿꼿하게  걸어가시는 뒷모습만 보면

그 누구도 구순이라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운동을 나가시는 아버지.

그런데 겨울모자에 목도리까지 하고 계신다.


아버지.

지금 5월이에요.

옷차림이 한겨울이신데 덥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그래도 새벽에는 춥지 하시며

뒤도 안 돌아보시고 쌩하니 밖으로 나가신다.


칸트처럼 아버지의 일상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유사하다.  


오늘도 8시쯤 운동을 끝내고 집에 오시면

아침을 드신 후 색소폰을 불러 가실 것이다.


오후 5시.


다른 날보다 일찍 음악실에서 돌아오신 아버지.


마리아야.

집에 감기약 남은 것 좀 있니?


왜요?

감기 드신 것 같으세요?


몸이 으슬으슬하고 가래 기침이 좀 나서 그래.


아버지.

요즘 감기가 엄청 독해요.

약은 있는데 병원에 갔다 오시는 게 좋겠어요.


다음날 아침.

기분 좋게 일어나신 아버지는

딸 말을 듣길 잘했다고 하시며

주사 한 대 맞았더니 감기가 싹 달아났다고 하신다.


지금 컨디션이 좋으셔도 오늘은 집에서 쉬세요.

요즘 감기가 예사롭지 않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라.

감기가 독해봐야 감기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버지는 오늘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시는 듯하였다.


그날 밤 내내 아버지 방에서는 기침소리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설치고 계신 것이다.


핼쑥해지신 아버지.

남편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요번에는 수액도 맞혀 드렸다.

집에서 하루를 보내신 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

몸이 가뿐하다며 이제  감기가 싹 나갔다고 하신다.

아니라고 쉬시라고 염려의 말을 해도 소용없다.


도리어 그깐 놈의 감기 좀 걸렸다고

왜 이리 호들갑을 떨고 야단이냐며 호통을 치신다.


씩씩하게 음악실로 출근하신 아버지.

그날 밤.

다시 콜록콜록 더 심해진 기침감기.

가래 끓는 소리.


또 잠을 설치고 계신다.

뒤척거리시며 내는 신음 소리가 밤새 거실을 지나  

우리 방까지 들려온다.


남편은 다음날.

식사도 못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병원에 가야만 했다.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꼿꼿했던  자세는

어디로 갔는지 어깨가 축 처지시고

흐느적흐느적 걸음걸이가 힘이 하나도 없으시다.


세 번의 병원 방문 후 아버지는

바깥출입을 자제하며 몸관리를 하셨다.


노년에 접어든 우리도 살다 보면

컨디션이 좋은 날 나이를 잊고

건강 앞에 방자해질 때가 있다.


늙어지면 몸은 더 좋아질 수 없는

비가역적 상태가 된다.


지금의 건강 상태를 잘 분배하여 사용해야

그나마 건강하게 여생을 마무리할 것이라 믿는다.


90세의 나이에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배움을 아끼지 않으시고 젊은이들과 어울려

적극적으로 취미 활동을 하시는 아버지.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다.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시며 주위에

귀감이 되시길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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