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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Sep 04. 2023

엄마의 제자들


엄마가 첫 부임한 곳은 여주 강천면의  

시골 초등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과

엄마와의 아름다운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거기 최옥수선생님 따님댁이죠?


엄마의 첫 제자이며 반장이셨던 80 세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 네, 맞아요.

  잘 지내셨어요?


내 신원을 확인하신 반장 할머니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신다.

- 선생님은 안 계셔도 사부님은 잘 계시나 해서

   안부 전화 했어요. 아버지 건강하시죠?

- 네 건강하세요.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것 빼고는요.

- 나이 들면 다 그렇지요.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네요.


아버지와 잠시 통화를 하신 제자분은

12월에 구순 잔치를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내게 아버지 구순 잔치에 제자들도 꼭 초대해 달라고

하신다. 나는 연세들이 있으신데 여기까지 오시려면 힘드시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 우리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참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언니 동생이 같은 학년인 애들도

   있었고 서너 살 늦게 들어온 애들도 있었어요.

   그 애들이 지금 70대 후반부터 80 나이가 되었네요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꼭 가봐야 할 곳은 지팡이를

   짚고 라도  가야지요. 걱정 말고  날짜 정해지면

   동창회 회장한테 꼭 전화 줘요.

   동창회장 전화번호 알지요?


신신당부하시는 제자분.

몇 년 전인지 엄마의 치매가 좀 심해지시기

시작한 때였다. 흩어져 살고 있는 제자분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멀리 서들 찾아왔다.

그날은 우리 식당에서 점심을 드셨는데

엄마와 대화가 거의 되질 않아  너무 안타까웠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로 제자 분들의 스승의 날 방문도 끝이겠구나.

대화가 안 되니 다시 오시겠나.

기분이 착잡했다.

그러나 제자분들은 그 뒤에도 거의 매년 방문하셨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오셨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는 스승님.

장마로 개울물이 넘칠 때면 아이들이 떠내려갈까 봐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업고 개울을 건너

등하교를 시키셨단다.


선생님이 그 초등학교를 떠나시던 날.

아이들은 찻길까지 쫓아 나와 선생님을 배웅했다

까마득한 70년 전에 인연을 맺은 스승과 제자.

그 제자들은 돌아가신 선생님의 부군까지

챙기고 계신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할 것만 같다.


교실이 없어 나무 그늘아래 모여 앉아

글을 배웠던 시절.

그때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못 밟았던 시절이다.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다던데.

그때만큼 선생님의 위상이 높았던 때는 없었을 거다.


현실 교육이 어디서부터 삐뚤어진 것인지

스승의 권위는 바닥을 치고 교권은 상실된 시대.

스승의 날을 차라리 없애달라는 선생님들.

하루하루 무탈하기만 바란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아프다.


하루빨리 교권이 회복되어 백년대계 우리 꿈나무들을 잘 키워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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