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곽성숙

아버지는 우리 나이로 올해 92세 이시다.

매 끼니 밥 한 그릇을 뚝딱 드시고 나면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며 늘 감사의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

2주 전쯤이다. 국수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특별 메뉴로 잔치국수를 삶아 드렸다.


큰 냉면그릇에 국수를 듬뿍 넣어드려도 거뜬히 한 그릇을 드시는 아버지신데 그날은 달랐다.

2/3 정도를 드신 아버지는 이거 다 못 먹겠구나.

이가 아파서 내일은 치과에 가야겠는걸.

언제부터 아프셨냐고 하니 3일은 된 것 같단다.

이빨이 아플 때는 바로 치과를 가야 덜 고생하셔요.

빨리 말씀하셨어야지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치료받고 나면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야채죽을 쑤어 드렸다.

아버지는 죽을 드시자마자 사위에게 빨리 치과에 가자 하신다. 아직 일러요. 전화로 예약하고 가야 기다리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치과 문 앞에 가서 기다리자며 서둘러 나가신다. 통증이 심하신 건가?


2시간을 기다려 진찰을 받았는데 잇몸근육통이라 약만 먹어도 된다고 하였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날 저녁.

죽을 드신 아버지가 갑자기 어지럽다며 비틀거리시더니 일찍 자리에 누우셨다. 새벽 5시 반 이면 일어나셔서 샤워부터 하고 공원에 나가시는 아버지가 오늘은 조용하다. 7시가 되어도 8시가 되어도 일어나실 생각을 안 하신다. 남편이 억지로 깨우니 일어나셨다가는 다시 누워버리시는 아버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급히 가까운 단골 내과에 갔다.


이런저런 진찰을 한 의사 선생님은 별문제가 없으신 것 같다며 밤에 잠을 잘 주무시느냐고 묻는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음악실도 거의 안 가시고 집에만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집에만 계시니 낮잠도 많이 주무시고 밤에도 잘 주무셔요.


의사 선생님은 낮잠을 많이 주무시는 건 밤에 못 주무신다는 겁니다. 어지럼증약과 잘 주무시라고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한다.

죽만 5끼를 드신 아버지를 위해 반짝 힘나시라고

영양주사를 맞혀드렸다. 그런데 집에 오신 아버지는 여전히 부축을 하지 않으면 당장 쓰러지실 듯 비틀거리시고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쓰시는데도 이내 쓰러져 자고 계신다. 혹시나 화장실에서 어지럼증으로 쓰러질 실까 봐 의자를 갖다 놓았는데 두 번이나 의자에 털퍼덕 주저 않으셨다.


걱정이 되어 가족방에 상황을 설명하고 동영상을 올렸다. 딸은 의사인 시숙에게 동영상을 보내며 의견을 물었더니 빨리 응급실부터 가시라고 했단다.


밤 12시 응급실에 가자는 사위에게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거부하셨다. 딸은 의사 표현을 하시는 걸로 봐서는 아직 위급상황은 아닌 듯하다며 내일 새벽에 가셔도 될 것 같다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새벽.

남편은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5~6분쯤 지났을 때 구급차가 도착했고 남편과 함께 아버지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셨다.


CT. MRI. 피검사. 심전도 검사등 모든 검사 결과가 아주 정상으로 나왔단다. 검사 결과가 이상이 없는데 무슨 문제일까 생각하던 의사 선생님은 혹시 요즘 약 드신 것 있느냐며 아버지가 최근 드신 약에 대한 정보를 컴퓨터로 검색을 했단다.


치과에서 정신신경과 약인 야뇨증 약(어지럽거나 졸음이 올 수 있음)을 드렸네요. 이 약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 같네요. 내과의 어지럼증약이 심박동 수를 느리게 만들었을 것이고요. 평생 한 번도 드신적이 없는 신경안정제도 크게 한 몫 한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닌 약들이 약해진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약을 끊으시고요. 퇴원하여 집에서 쉬시면 좋아지실 거예요. 일단 지켜보지요라고 했단다.


가족들은 건강에 좋다는 먹을 것들을 보내오고 몸보신을 하시며 2주를 기다렸지만 기력이 좀처럼 회복되질 않으시기에 한의원에 모시고 가서 보약을 지어드렸다.


어제저녁. 평소의 절반 밖에 식사를 못 하시는 아버지께 좋아하시는 국수를 삶아 전에 드시던 만큼 담아드렸다.


국수가 너무 많은데. 다 못 먹어.

내가 유튜브를 봤는데 죽을 때가 되면 많이 못 먹는다더라.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아.


아버지.

날씨가 더우면 젊은 사람들도 입맛이 없어요.

엄마를 생각해 보세요. 누워계시면서 못 드시니 돌아가셨지요. 아버지는 기력이 달리셔서 그러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한 술 더 드시고 보약도 꼬박꼬박 드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국수 한 대접을 깨끗이 비우셨다.


오늘 아침.

공원을 다녀오신 아버지께 좀 어떠세요 하고 물으니


다 나았다.

아주 개운해.

그동안 고생들 많았지?

이제 다 좋아져서 한약은 며칠만 먹으면 될 것 같아.

한약 양이 너무 많더라.

언제 다 먹니?

우리 다 같이 나눠 먹자.


아침을 드시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조용히 들고나가시는 아버지. 뒷모습을 바라보니 걸음걸이는 아직 어눌하시다.


잠시 내게 물려주셨던 설거지 영역.

아버지께서 조만간 탈환하실 것 같다.


분명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마리아야.

넌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좀 쉬어라.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라고.


나이 들어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삶 안에서 보고 깨닫게 해 주시는 아버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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