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우린 어렸을 적 꿈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뛰어놀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직접 만나는 꿈. 어렸을 적 꿈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기초했다.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게 좋아서 선생님이, 동물들을 보살펴주는 것이 좋아서 수의사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아서 경찰관이 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희망 진로’를 적어 내야 했다. 그 조그마한 네모칸에 들어가기엔 우리 꿈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적 꿔왔던 ‘어떠한 행위를 했을 때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꿈’을 너무도 획일화되고 간단히 표현 가능한 ‘직업’으로 치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꿈이 많은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꿈으로 치환된 희망 진로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대학에 들어가 치열하게 전공과목을 배운다. 그러나 이 직업이 내가 진정 꾸었던 꿈이 아녔음을 알게 되는 건 야속하게도 사회에 발을 딛고 책임질 무게가 하나둘씩 생기고 난 후, 이제 와서 바뀔 염두가 나지 않는 몸과 머리가 커버리고 나서일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과외부터 시작해서 영어 사교육의 최전선에서 9년째 학생들을 바라봐왔다.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내게 더 많은 인사이트를 주기도 한다. 하루는 ‘Pursuing one’s dream’ 꿈을 추구한 사람들에 대해 가르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도 내용에는 흥미가 없어 보이던 한 아이가 물었다. “쌤, 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밤에 잘 때 꾸는 꿈도 꿈이라고 해요?” 생각한 적 없었던 물음에 좋은 질문이라고 머쓱하게 칭찬한 후, 나름의 설명을 장황하게 붙였다. “쌤 생각엔 아마도 우리가 어떤 꿈을 간절히 원하면 자면서 꿈속에서라도 상상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질문한 아이는 내 대답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갸우뚱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꿈이라고 하는 거 아니구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꿈을 꾸기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꿈을 높이 가진 채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그렇고 나는 꿈이 뭐였지? 내 머릿속에서도 혼란이 왔다. 답은 네가 찾아보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려버리고 수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문법 수업시간, 가정법을 설명하면서 나름의 ‘아하 모먼트’가 생겼다.
'If' 라는 접속사는 가정법으로도 조건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둘 다 “만약 ~라면”이라는 해석은 동일하지만 사용하는 시제에서 차이가 난다. 가정법은 이미 발생한 상황의 반대를 가정, 즉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상상하는 것이고, 조건법은 일어날 수 있는 앞으로의 상황을 조건으로 거는 것이다. 가령, “내가 (여자인데) 남자라면”, “내가 고3 때 조금만 더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등의 현재나 과거의 상황을 반대로 상상해보는 것은 가정법이라 한다. 반면에 “내가 이번 시험에 100점을 맞는다면”, “네가 날 맘에 들어한다면”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조건으로 상상해보는 것을 조건법이라 한다.
이 가정법의 설명을 끝낸 후, 어쩌면 꿈(Dream)은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상상하는 ‘가정법’과도 같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고등학생들의 입시를 도와주며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활동들과 독서 상황, 내신관리 등을 전반적으로 코칭하는 입시 코디로서 첫 상담 때 내가 묻는 질문들은 전형적이다. “어느 진로/학과를 희망하나요?”, “희망 진로 관련 활동은 어떤 것을 했나요?” 열심히 자신의 꿈을 추구하며 그걸 이루어내라고 가르쳤던 교육자로서의 가치관과 긍지는 입시 현실의 벽 앞에 철저히 냉소적으로 변했다. 학생들의 꿈은 완전히 배제한 채로. 그래서 요즘은 상담을 진행하면 맨 마지막에 의식적으로 물어본다.
그것이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고.
우리는 교육제도 안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기를 강요하고, 꿈을 직업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그렇게 지도하지 않더라도 ‘생기부를 써야 하니까’, ‘돈을 잘 벌어야 하니까’, ‘성공해야 하니까’ 등의 갖은 이유들을 가져다가 아이들의 꿈을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분위기 속에서는 아이들도 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기 마련이다. 나는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단순 명사인 직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끼는지의 가치관이 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Dream'을 교육하는 교육자이기 보다, 'Goal'을 교육하는 교육자이고 싶다.
내 꿈은 교육자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꿈이 없었던 쪽에 가깝다. 오히려 교육업계에서 종사하긴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이 조금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더 재미있게 본인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꼈고, 이것이 내 꿈이 되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교육에 대해 부족한 내 지식을 보충하겠다는 목표로 교육학부를, 세부 전공으로는 교육공학을 바뀐 전공으로 선택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생애 처음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좋아서 공부해보니 힘은 들지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꿈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잠을 잘 때 뇌가 상상의 세계를 헤매며 보여주는 꿈 또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쫓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 현실 가능한 계획을 세워 목표를 정하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과정일 뿐. 만약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전전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세우고 세부적인 액션플랜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꿈으로만 상상하며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여태 자신의 목소리보다는 타인의 목소리를 더 들어오진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