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 Dec 27. 2020

미래의 인류가 두 종류로 나뉜다면

진화하는 인간과 퇴화하는 인간

  Domestication(가축화, 사육)과 Brain Size의 관계성을 입증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었다. 인간에 의해 먹이와 쉼터를 제공받은 가축들은 두뇌의 사이즈가 점점 작아진다는 결과인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생존의 위협에 민첩하게 반응하기 위한 능력이 필요했던 조상들에 비해, 가축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능력이 필요가 없어져 두뇌가 퇴화되고 사이즈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유는 바로 vice versa라는 점이다. 즉, 반대로 야생의 늑대 무리에서 보호받고 길러진 인간 아이의 뇌 또한 일반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뇌에 비교했을 때 특정 영역의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1. 사육되고 보호받는 입장에서는 특정한 트리거가 없을 때 '능동적인 사고'가 어렵다는 점이고,
2. 우리의 뇌는 사용하지 않는 부분의 스위치를 꺼 다음 세대에서는 영영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채 결국 해당 부분이 두뇌에서 아예 없어진다는 점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역사 깊은 관점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가"인데, 능동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인간의 두뇌는 이 부분을 사용하지 않으니 셧다운 시키고,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선 아예 뇌에 그런 능력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게 참 충격적이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스페이스, 디스토피아 sf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궁극적으로는 동물이 된다는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세대를 건너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당장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사고방식이 다르고, 같은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도 사고방식이 다르다. 가령, 수학과 과학에 전혀 관심 없었던 나의 경우, 코로나 백신의 원리나 블록체인/빅데이터의 원리를 백번 들어도 그렇다는 사실만 듣고 넘길 뿐 충분히 이해하진 못한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미래 기술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두뇌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사실 그 차이를 알기 두려운 것도 있다)

  이게 아직 굉장히 뜬구름 잡는 먼 소리처럼 들린다면, 당장 2020년의 초등학생을 보면 된다. 코딩 교육이 공교육에 의무교육과정으로 포함되면서 아이들은 프로그래밍 언어, 수리적 사고 과정을 터득한다. 근데 이를 배우지 않은 나 포함 우리 어른 세대는 "코딩 교육 왜 배워야 해?"라는 질문에 "프로그래머/개발자가 돈 잘 벌어"라는 1차원적인 답을 하기 쉬울 것이다. 이것을 <미래 기술로 연결 지어 활용>하는 사람들과 <다들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사람들의 능동성(혹은 주관..) 차이는 자녀세대에도 전이가 될 것이고, 그렇게 '무조건 남들 가는 좋은 대학, 좋은 대기업'을 가훈으로 듣고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수동적으로 일상과 인생을 대하는지 요즈음 너무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자란 세대는 파충류의 뇌와 비슷해진다" - tvn 미래수업)
이것이 스마트폰의 문제라고 따끔하고도 무섭게 이야기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인사이트를 얻었다. 스마트폰 사용도 일상적인 행위이자 태도이기에 결국 더 깊이 들어가면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요즘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풀어 정리하자면,
코시국(코로나 시국)에 원격교육, 원격근무가 뉴노멀이 되면서 자기 주도 학습습관이 원래도 있었던 학생들과 누군가가 시켜서 공부했던 학생들 사이에서 격차가 너무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학습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가르치는 강사 입장에서도 느끼는데 부모들은 오죽할까..
시험이 끝난 후 아이들의 학습태도 때문에 상담을 신청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매주 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했으면 좋겠는데 스스로 안 하고 너무 수동적이라 미치겠다는 학부모님들의 말에, 나는 '이건 너무 근본적인 문제라 대부분 부모의 모습과 부모와의 소통에서 자리 잡는 태도입니다..'라는 진심은 삼키고, 교육서비스업 종사자답게 말한다. "제가 더 열심히 가르쳐보겠습니다"라고.

  이 능동성 차이는 분명 더 커질 것이다. 이 차이가 앞으로의 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데 넋 놓고 있으려는 부모는 없다.
내 자녀가 능동적으로 사고하길 바란다면 (과잉) 보호하지 말고 지금 당장 넘어져보라고,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라고 뒤에서 지켜봐 줘야 한다. 맛있는 밥을 해서 먹여주지 말고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하며 이번엔 네가 해보라고 역할을 나눠야 한다. 그러니까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이끌려고 하는 가이드가 아닌, 뒤에서 바라봐주고 지켜봐 주고 묵묵히 기다려주되 너무 멀리 가진 않도록 스스로 깨닫도록 조용히 그 자리에서 표시만 해주는 표지판에 가깝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도 문맹일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