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전기 건설 특급 기술자다

by N잡러

건설 분야는 여성들이 많지 않다. 그중 전기 건설기술직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20년 근무하는 동안 다른 전기단종업체들, 건설회사 직원 중에도 몇 명 보지 못했다. 아파트 전기 shop drawing하는 사람은 종종 있었으나 전기를 모르고 하는 것의 한계 때문인지 그들마저 그만두었다. 전문성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라는 불평등이 넘쳐나던 시대이기도 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있었다.


여자로서 느꼈던 불편을 넘어 부조리를 겪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건설 분야 경력사원 면접을 보며 “여자인데 지방 근무 가능해요? 야근할 수 있어요?”라는 물음에, 경력직 뽑는 것 아니냐 그렇게 안 하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 않으냐며 할 수 있다고 답을 하면서도 분함을 느꼈다. 분명 본사 근무 경력직 모집이었다. 여자라는 걸 알면서 왜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 결국 여성도 면접에 참여시켰다는 걸 알리려고 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 당시 ‘여성부’의 신문고 같은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내 글을 보고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그 회사가 어디인지 물어보더라. 난 반대로 그럼 여성부에서 뭘 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고 시정조치 명령을 공문으로 보낸다는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더 답답해졌다. 어차피 난 입사에서 탈락했는데 시정조치 공문이라고 해봐야 앞으로 면접에서 그러지 않겠다는 답변으로만 처리하면 끝이다. 회사는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여자는 면접도 보지 말아야겠다고 여길 거라고 담당자에게 말하며 그냥 두라고 했다.


직장 내에서도 경리업무가 아닌 기술 전문직 여성으로, 같은 여자의 시기 질투가 더 힘들었다. 건설업이라는 분야에 여자가 적다 보니 그들이 보기엔 남자직원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같은 업무 이야기로 소통하는 모습도 자기와는 다르게 대한다고 느꼈나 보더라. 나중엔 윗사람이나 동료에게 대놓고 왜 나만 아끼고 챙기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렇듯 세상살이 곳곳에 여자로 겪는 불합리와 부조리는 존재한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한 것들도 있고 반면 별스럽지 않은 일들도 있다. 내가 처음 전기 건설기술직을 시작하고 20년이 넘었으나 여전히 불평등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직 여성이어서인지 회사 직원들이 좋아서인지 차별을 느끼지 않고 직장생활을 했다. 오히려 인정받았다. 전기공사기사 2급, 1급 자격증에 경력이 더해져 경력기술자 중 최고단계인 특급기술자가 되었다.


본사에서는 견적업무뿐만 아니라 직원과 현장 소장 기술교육을 하고, 현장에서는 직접 시공상태를 확인하는 검측도 하고 도면도 그리고 회의에 참석했다. 현장 시공을 맡은 전공들과도 잘 지냈다. 심지어 반장 중엔 나를 ‘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본사에서 도면과 견적에서만 보던 자재들, 시공방법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 상황을 모르고 산출, 견적한 것도 알게 되었다. 전기설계사무실에서 단순하게 그렸던 도면이 왜 시공이 안 되는지 시공회사의 실무와 현장에서 근무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 알바에서 시작한 전기 분야, 언젠가 전공인 디자인을 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새 맘에 드는 분야가 되었다. 여성이 많지 않은 분야인 전기기술직이 나에겐 기회였다.


하지만 IMF 이후 현장에 상주하는 건설회사 직원이 차부장급에서 과장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은 민간건설분야는 종합건설에서 관리업무를 맡고 건축, 설비, 전기 단종회사를 하도업체로 두고 입찰을 통해 공사계약을 한다. 그러다 보니 종합건설 직원이 갑이다. 과정이라고 해도 나보다 나이가 적었다. 업무지시를 해야 하는 하도업체 직원이 나이가 많으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결혼한 여성이니. 업무처리나 관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녀 양육과 병행하며 직장생활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본사는 입찰견적이 있으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야근도 해야 했고, 현장도 shop 도면을 시공할 수 있게 그려내려면 야근하는 일도 생겼고 화장실 등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던 중 보험회사 설계사가 전해준 책자에서 노후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경제적으로 돈이 필요하고 활동을 위한 일과 같이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건설기술직은 아니라는 생각과 더불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둔 엄마로 자연스럽게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교육자이자 강사로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