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강사다

by N잡러

전기 건설분야에서 20년 정도의 경력도 쌓고 실력도 인정받고 급여도 많았지만 아이가 커서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니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이 생겼다. 1997년 IMF 이후 건설 경기도 많이 쇠퇴했다. 또한 건설 분야라 상대적으로 남자가 많았고 복지부분에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기혼여성이 개인 집안사까지 살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2008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아이는 힘들게 얻었지만 특별한 교육관이나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단지 열심히 살았다.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고, 시집살이였지만 시댁 식구들과도 잘 지내고 집안 대소사 챙기며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집안일에, 집안 행사에 밀려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마흔 나이를 터닝포인트로 생각하고 평소에 독서에 관심이 있었으니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사교육비 대신 책을 사주는 게 낫겠다 싶었던 생각도 있었다. 2008년 마침 독서 열풍이기도 했다. 하지만 딱히 아동 책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더 늦기 전에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려면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독서교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실을 서재로, 초등졸업까지 3,000권, 10,000권 읽기 등 다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다행히 과잉된 독서가 아닌 공공자원인 도서관을 기반으로 도서관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도서관옆신호등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3개월 정규과정을 듣고 주말에 개인 북시터 활동도 했다. 신기하게도 당시 근무하던 곳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곳에 도서관옆신호등 사무실이 있었다.


그러다 개인 북시터로 만나는 소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화여자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사과정도 있기에 지원했다. 지원자 자격이 정규대학 졸업이었다. 나는 전문대 졸업이었지만 지원했다. 그 당시 북시터기관들 비교와 어떻게 확장하면 좋을지, 교육상황 등 내 나름대로 파악한 내용을 같이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을 통해 나의 간절함과 차별성을 보았을 것이고 선발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 경험으로 이후에 내가 원하는 과정이 있으면 자격이 되지 않아도 지원한다. 지원자의 간절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에 대해, 작가, 독후 활동,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 책 선정 등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림책 분야가 그렇게 넓고 깊은 줄 몰랐다. 그림책작가 분석도 하고, 발달단계 공부도 하고, 문화권별 특징도 공부했다. 성격유형(MBTI)나 색채 심리학 같은 각기 다른 분야 강사들의 강의 내용이 모두 재미있고 좋았다. 그렇게 강사과정 6개월을 마쳤다.


2008년 여름, 과정은 끝났지만 막연하게 선망하던 강단에 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선배 강사들, 지도교수와 동기들 앞에서 과제로 제출했던 내용을 강의안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지도해준 교수에게 “강의는 열심히 노력해서 되기도 하지만 타고 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정승훈씨는 목소리도 그렇고 강의하는 모습을 보니 타고 났네요.”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관심이 있는 분야라 시작한 것인데 재능도 있다고 하니 너무 기뻤다. 나의 재능인 줄도 몰랐던 말하는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 마흔에 말이다.


북시터 실제 수업을 100시간을 채우고 2009년 2월 강사과정의 마지막 과제는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2개의 강의안을 만들어 지도교수 앞에서 시연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교과연계 독서와 체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통합교육으로 본 죽음’이었다. 강의안 준비를 하며 관련 책을 살펴보고 강의ppt에 사용할 사진 자료를 고르는 작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다. 2시간 강의를 위해선 그 열 배에 해당하는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느 책에선가 보았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맘에 드는 사진 하나를 찾고 고르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강의안 준비를 위한 시간이 신기하게도 재미있고 새로웠다.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된 방법이 생각 그물이었다. 죽음을 키워드로 두고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맥락이란 것이 생겨난다. 중간에 부족한 부분은 자료도 찾아보고 보완했다. 그 맥락을 잘 연결하니 강의안이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새로운 강의를 할 때면 이 방법으로 했다.


역시나 전문가의 눈에는 부족한 부분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내가 준비해 간 강의안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집어줬다. 강의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며 중간에 쉬어갈 수 있게 웃음코드도 넣어야 하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결정적인 것으로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준비한 자료와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3월에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외부 강의를 나가기 전에 북시터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에 대해 처음으로 강의하게 되었다. 첫 강의라 많이 떨렸다. 강의 피드백을 위해 같이 들어준 동기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니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나 보다. 강의가 잘 맞았다. 무엇보다 강의하며 말이 막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내용 연습을 많이 하거나 글로 써서 외우지도 않았다. 강의안을 만들어 놓고 ppt를 보며 그때그때 이야기를 한다. 같은 강의라고 해도 같은 ppt를 똑같이 쓰지 않고 매번 수정한다. 강의하는 시기에 적절한 사진과 영상으로 교체한다.


이후 많은 스터디와 개인적 독서, 북시터 활동 등을 통해 쌓은 경험으로 전국으로 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초창기 강의할 땐 독서가 잘 먹히던 때라 전국으로 강의를 다녔다. 수도권 학부모뿐만 아니라 강의에 목마른 지방의 학부모를 만나며 한참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래서 확언도 많이 했고, 방법 제시도 많이 했다. 물론 아이도 어려서 독서, 공부, 체험 모든 게 잘 되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초창기 강의 들었던 분들을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A/S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많은 강사들이 초기 강의에 대해 이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툴던 독서 강의가 2021년 올해로 14년차다.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를 하며 내가 말하는 언어지능이 남들보다 발달했고,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강의안에 몰두할 때는 꿈속에서도 그 내용이 나왔다. 이후 새로 알게 된 나의 기질은 나의 신념과 확신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준비해서 알게 된 내용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강의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다들 그렇긴 하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이 참 힘들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 강의는 고민하게 되었다. 이젠 부정적 피드백도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강의가 참 좋았다. 강의에 소질이 있다는 것에서부터 자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강의를 하면서 느껴지는 영향력이 좋았다. 강의하다 보면 나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순간 ‘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게 잘 되고 있구나!’를 느끼며 나 역시 즐거워진다. 수강생들이 집중하며 나의 강의에 반응하는 것으로, 한 명이라도 나의 강의를 듣고 좋은 쪽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전 01화1. 나는 전기 건설 특급 기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