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가 되는 데 필요하고 중요한 두 가지

by N잡러

1. 유연성(柔軟性, flexibility)


몇 년 전 모임에서 국내 여행을 갔다. 저녁을 먹고 모여서 상담을 전공하신 분이 버츄얼 카드로 작은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어요. 카드 중 하나를 뽑아보세요.”라고 했고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를 골랐다. 자기가 뽑은 카드를 서로 돌아가며 읽었다. 카드는 가져도 좋다고 해서 지금도 책꽂이 앞에 두고 있다. 내가 뽑은 카드는 ’유연성‘이었다.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연성은 변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합니다. 유연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면 창조적인 길이 새롭게 열립니다. 또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유연성은 우리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도록 도와줍니다.”

그걸 보면서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때도 여러 경험과 N잡러로 살아가고 있긴 했지만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며 경직된 사고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감정 표현에 인색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동안 내가 유연하지 못하게 살아온 것도 몰랐고,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거짓된 모습, 말을 싫어했고 스스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정직함과 솔직함이 나에게만 적용하는 잣대는 아니었다. 상대가 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나와 다를 뿐인데 틀린다고 생각했다. 나와 다른 걸 인정하게 되는 것과 나와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또 다른 것이긴 하다. 더불어 내 기준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니 상대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했다. 상대에겐 그것이 폭력이라고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유연함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나를 갑갑하게 여기기도 했다. 심지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겠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나중엔 더할 나위 없이 친해지긴 했다.


그 여행에서 내가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것, 유연함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너무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내가 유연함이 없다고 하니 주변에선 아니라며 지금 충분히 유연하다고 했다. 아마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연하게 보였나 보다.

N잡러가 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많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N잡러의 도구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유연성이다. 유연하다는 것은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유연하다는 것은 비판적 사고를 하고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연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생각에서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 화를 낸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잘 안다.


둘째, 미래사회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유연해야 한다. 고정관념과 틀을 가지고 있으면 어렵다. ’~다워야 한다‘는 말, ’~해야만 한다‘는 말 모두 고정관념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고정관념을 남에게 요구한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이 쉽지 않다. 먼저 내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부터 해야 한다. 요즘 표현 중의 하나인 ’~라떼는 말이야’처럼 꼰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것 또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셋째, 어디에나 문제는 항상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유연성은 필요하다. 문제 해결은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연성이 떨어지면 문제 해결방법을 찾기 힘들다. 해오던 대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려운 건 당연한데도 말이다. 혼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방법도 들어보고 시도해봐야 한다.


N잡러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려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을 나누어야 한다. 여러 문제가 생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계속 N잡러로 살아갈 수 있다.


2. 창의성(創意性 , creativity)


N잡러는 그 직업의 전문성에 관해 말할 필요가 없다. 전문성을 전제하고 유연성과 함께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이란 서로 다른 것이 만났을 때 생겨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새롭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에서 창의성은 시작된다.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거나, 비일상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 창의성의 개념이다. 창의성(creativity)의 어원은 Creo(만들다)의 어근으로 하는 Creation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에이션은 자란다, 만들다라는 뜻이 포함된다.


어원처럼 창의성이라는 것은 무언가 있는 것에서 만들거나 자라나는 것이다. creator와 the Creator는 다르다. 소문자는 창조자, 창작자이며 대문자는 창조주 즉 신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결국 크리에이터다. 어쩜 이건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일 수 있다. 인간에겐 발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발명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한 요소로서 발견과 함께 쓰이는 말이지만, 물질적 창조라는 점에서 발견과는 구별된다.


“세상에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거나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에 나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보고, 새롭게 시도하고,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 기업의 광고에선 혁신이란 뜻의 이노베이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고 광고책임자 박ECD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섞고, 비비고, 바꾸는 것이 바로 00이노베이션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광고 카피도 ‘생각이 에너지다’,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우리에게 혁신은 자연스럽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지킨다’처럼 새롭고 신선하다.


N잡러는 기존의 직업을 여러 개 가진다는 의미도 되지만 앞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 또한 없던 직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던 직업에서 창의적으로 접목해서 다른 방식이나 다른 사람들, 다른 형태로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너무 거창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면 나는 창의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남들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남들이 ‘그게 되겠어?’ 할 때 ‘왜? 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 남들이 ‘이렇게 하는 거야’ 할 때 ‘난 이렇게 해볼래’하는 것. 남들과 반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새롭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창의성과는 멀다. 입시 위주의 경쟁과 주입식 교육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외우고 답을 찾는 시험에 최적화된 학생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다. 학창시절엔 창의성 교육을 한다면서 수업에 방해되니 질문도 못 하게 하다가 성인이 되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내라고 한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는 답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의 교육 목표엔 버젓이 창의적 인재라는 명제가 존재한다.


창의성을 키울 수 없는 것은 비단 교육만이 아니다. 사회정치적으로 우리의 역사가 그래왔다. 군사독재정권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똑같은 기준과 가치관을 요구했다.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주위 사람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빨리 가려면 모두 똑같은 목표와 가치관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우린 전통과 권위를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가 창의성을 키울 수 없었다. 연장자에게 공손한 태도로 어른의 말을 경청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버릇없다거나 당돌하다고 취급받았다. 어린 것이 무얼 아냐며 무시당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버릇없는 태도라며 혼이 났다.

주입식 교육과 군사독재정권과 유교 문화, 이 세 가지가 모두 창의성을 발휘하게 힘들게 만드는 한국사회의 특징이다. 한국 사람은 특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생활한다. 한국 사람의 뇌를 촬영해도 외국 사람과는 달리 남과 비교할 때 발달하는 뇌를 가졌다고 한다. 세계여행을 가족과 다녀온 아버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남자가 머리를 기르면 다들 쳐다보며 지나가는데 외국 어디를 가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요즘은 좀 덜 하지만 남자가 머리가 길거나 여자가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외모에 대한 기준도 남들과 다른 것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젠 해당하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 없이 이어갈 수 없는 산업 분야가 생겨났고 결혼 이주여성과 탈북 가정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창의성은 ‘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하는 남들이 평가나 시선을 두려워하면 생길 수 없다. 인간의 뇌는 실제로 행동으로 하는 것과 생각으로 떠올리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운동선수가 병실에 누워 생각으로만 운동했는데 운동한 것과 똑같은 몸 상태였다는 사례도 있다. 창의적인 생각을 자꾸 해보자. 어떤 것을 실제로 하기 전에 머리로 시뮬레이션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 실행할 때 시행착오도 덜 겪을 것이다. 뇌의 전기 신호는 자꾸 사용할수록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면서 발전한다. 창의성도 연습으로 가능하다.

나 역시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적용해보면서 창의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다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세대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이제 남과 달라야 하는 시대다. 2021년 초에 정부지원사업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지원했다. 탈락했다. 이유는 사업의 차별성과 구체적인 실행이 가능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사업계획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는 사업뿐만 아니라 책도 마찬가지다.

N이란 무한대로 넓혀갈 수 있다. 하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해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 프로 N잡러로 10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10가지가 또 어떻게 다른 N잡러로 연결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동안의 여러 경험과 사람들이 새로운 N잡을 만들 수 있다. 이제 혼자서 하는 1인 기업에서 각자의 1인기업가가 각자의 일을 하다가 필요하면 모여서 시너지가 나는 일들 하는 형태다. 1인기업가로 혼자 할 때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시간도 본인의 일정에 맞추면 된다. 그래서 의외로 1인기업가들이 협업이 안된다. 혹은 1인이 브랜드인 경우가 있다. 그 브랜드 하나를 위해 몇십 명의 사람들이 일하는 경우다. 그냥 직원이다. 브랜드인 그 사람이 멈추면 전체가 멈춘다. 내가 추구하는 N잡러의 시대는 한 명의 유명 스타가 N잡러가 되어 하부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N잡러가 모일 때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미래의 N잡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 유연성과 창의성, 두 가지를 골랐다. 많은 N잡러들이 같이 만들어갈 미래는 예측불가, 상상불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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