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 당연하다?
사랑 없는 결혼은 현대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계약결혼이니 정략결혼이란 단어는 있지만 보편적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이 언제부터 당연했을까?
영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베네트가 언니 제인에게 “깊은 사랑 없인 나도 결혼 안 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또한 친구 샬롯이 엘리자베스의 사촌인 목사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색을 하자 “내게 사랑은 과욕이야.”라고 한다. 20대 후반 나이든 여자가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고 생계를 이어갈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던 시대다. 그런 이유로 베네트 부인은 딸 다섯을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 시집 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시종일관 연 수입이 얼마인지 말한다. 관객은 그런 엄마를 보며 속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 말, 19세기 초는 아직 신분제와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시대이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며 부모가 정해준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베네트의 친구 샬롯이 결혼한다고 했던 목사인 사촌은 그 당시 딸은 땅을 물려받지 못해 베네트가의 토지를 물려받는 상속자니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사촌 목사와 결혼하면 땅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베네트는 이기적인 딸인 것이다.
영국의 귀족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딸이 결혼해도 지참금을 줄 형편이 안 되는 베네트의 가족도 일을 하지 않는다. 하인이 음식을 해주고 집안일을 한다. 그렇다고 부유한 귀족처럼 수예, 피아노 등 신부 수업을 하지는 못한다. 남자 주인공인 다아시처럼 영주이면 공물과 세금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귀족들에게 주어졌던 토지로 영주가 되면 런던 같은 큰 도시에 가서 지내는 기간이 더 길고 결혼을 목적으로 열리는 사교계 무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시대였다. 여자들에게 무도회는 남편감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고 경제적 독립은 결혼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건이 좋으면 결혼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인 오스틴에 의해 『오만과 편견』이 씌여졌던 1813년은 리젠시 시대다. 조지 4세의 섭정 시대인 1811~1820년 리젠시 시대의 귀족들은 결혼 따로 연애 따로가 당연한 시대였다.
현대의 낭만적 사랑을 결혼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계몽주의 사상이 생겨나면서 개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게 됨과 더불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귀족이 독점하던 자본을 새롭게 부상한 계층이 생겨나면서 신분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산업이 발달하고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과 전쟁으로 금융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 영화에선 막내딸과 결혼한 군인 같은 계층이 새롭게 생겨난 계층이다. 물론 막내딸과 결혼한 군인은 결혼 조건으로 다아시가 돈으로 장교직을 사준 것이지만.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어땠을까?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딸에겐 땅을 물려주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귀족은 그나마 돈 많은 남편을 만나면 평생 일을 하지도 않고 살 수 있지만 도시 일반 시민이나 농노들은 평생 일을 해야 하는 계층이다. 일한다고 먹고 살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아동, 여성의 노동력 착취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장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운 형편에 낭만적 사랑이라니 샬롯의 말처럼 과욕이다.
엘리자베스는 결혼한 샬롯의 집을 방문해요. 샬롯은 엘리자베스를 거실로 데리고 와 차를 따르며 “여긴 나만의 공간”이라고 하며 또 “내 가정을 꾸려서 너무 행복해.”라고 말한더. 샬롯은 나만의 공간, 내 가정을 꾸리는 것, 풍족한 삶을 보장받은 것이 감사하다고 하는 그것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샬롯에겐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경제적인 조건이나 외모로는 부자 남편을 얻기 어렵다 생각한 샬롯에겐 선택이 없었을 수도 있다.
산업혁명, 전통성과 근대성이 공존하는 과도기적 시대에 시대적 고민은 하나도 없는 사랑 타령만 하고 있는 제인 오스틴의 글이 비평받았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현재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꼽는 작가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글의 완성도와 표현력도 있지만 아무리 시대가 복잡하고 암울해도 사랑은 존재하고 사회 국가처럼 거시적인 차원이 아닌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랑하면 결혼하는 자유연애가 가능한 것도 개화기에 들어와서이니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 없는 결혼도 하고 샬롯처럼 N포세대인 젊은이에게 사랑은 과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 어떤 삶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