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엄마는 아이에게 우주다.

[민들레는 민들레] 김장성 글/ 오현경 그림

by 별빛

나를 의심하다


최근에 남편과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했다. 너무도 사소해서 남편이 이런 일로 왜 그러냐는 그 말에 더 마음이 상했다. 남편은 내게 농담을 못 받아들인다면서, 학창 시절에 어떻게 생활했냐는 핀잔까지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잘~ 했다!' 했을 텐데, 나도 내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회사생활을 했는지, 내 자신이 의심스러웠다. 육아와 함께 경력이 단절된 지 5년. 프리랜서식으로 종종 소일거리들을 하기도 했지만, 소속도, 제대로 된 수입도 없으니 나 자신이 작아져만 갔다. 내가 이토록 한심한 사람이었나, 나도 빛나던 때가 있었는데 하는 설움이 밀려왔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어~라는 주변 워킹맘들의 푸념은 부럽고, 길었던 육아휴직의 끝을 걱정하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엄마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금 본격적으로 일을 나서기에는 이제 막 이유식을 받아먹기 시작한 둘째가 있다. 둘째를 키워놓고 나면 거의 8년 가까운 공백기를 갖게 된다. 그 후에도 나의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불안함이 늘 존재한다. 아이와 재미있게 놀고 있냐는 지인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힌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문제가 나만의 것은 아닌듯하다. A 엄마는 이명소리가 지속되어 이비인후과를 전전했다. 그러다 만난 한 의사가 지속된 질문에 짜증을 내며 정신과나 먼저 가보라고 했단다. B 엄마는 소득이 없어서 은행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신용카드 발급이 안 되자, 며칠 째 우울해했다. 은행이 마치 성인으로서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했다. 또 C 엄마는 몇 달간 해외출장을 간 남편을 두고 혼자서 연년생 아이를 키우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너무나 예쁜 아이들이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지만,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갔다.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놓아버린 자신의 일이었는데, 엄마는 일과 함께 자신도 잃고 오히려 내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A는 꽃을 너무도 사랑했던 플로리스트, B는 시원한 성량을 뽐내던 성악가, C는 대학병원에서 열일하던 간호사였다. 모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을 열심히 성장시켜 온 사람들이었다.


왜 일을 않고 아이만 돌보고 있나


지금보다 살기 어려웠던 옛날, 그 존재의 부재로 상처 입은 내면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만은 튼튼한 내면아이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 아이가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자신을 펼치는 사람으로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곁에서 시간적, 정서적, 물질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외벌이의 무게를 남편이 져주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잠시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아이를 성장시키고 있다. 나의 젊음을 바쳐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는 그런 엄마를 자신의 '우주'로 여긴다. 몸이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가장 먼저 엄마~를 외치며 품 속을 파고든다. 아이들과 잘 놀고 있냐는 그 시간은 실은, 내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안전기지로서의 기초공사 중이다.


그러니, 멋지게 이 시간도 살아내야 한다. 굳건하게 존재해야 한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을 띄더라도 내가 가졌던 예전의 그 장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성장시켰던 그 능력과 자격증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고 단단히 자리 잡고, 내 아이들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림책 처방전: [민들레는 민들레]

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김장성 작가의 [민들레는 민들레]를 펼쳐든다.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노오란 빛은 여전히 아기자기 예쁘다. 꽃이 위치한 곳은 대부분 화려하지 않다. 고정된 화분 하나 없다. 그저 약간의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다.


새싹이어도 민들레. 노란 꽃이어도 민들레.

길가에 피어도, 벤치 틈에 피어도, 담벼락 아래 피어도 노오란 꽃이 예쁜 민들레이다.

그 젊음을 찬란하게 보내고 다시 하아얀 홀씨가 되어 날아올라도 민들레이다.


나는 존재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는 부엌에서도, 잠자리를 돌보는 침대방에서도, 즐거운 추억을 쌓는 놀이매트 위에서도, 아이를 등하원하는 담벼락 앞에서도.

나는 내 아이의 우주로서 존재한다.


지금 잠깐 추레한 모습이라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존재한다.

이제 100세 시대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아이들을 위해 잠깐 보내는 10년의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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