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이사 성탄절

해피성탄절

by 승 하

집착이 생긴다. 요즘 따라 보이지 않던 부표들이 하나둘씩 다시 떠올라 길을 잃게 한다. 배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해야 할 부표인데, 온갖 것들이 여기저기 떠다녀 정신을 잃게 한다. 정신도 육체이요, 육체도 정신이라. 빌려 쓰는 나의 몸 영원히 젊지 않고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자 진실이 오늘따라 - 슬프고 애처롭다.

오늘은 바빠도 엘리사벳.. 성당은 가야 한다는 외할머니의 귀여운 잔소리를 배경 삼아, 옛적에 멋으로 샀던 염주를 차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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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 다녀왔다.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꽤 정겨웠다. 예전엔 성당 다니던 몸이라 부처님 사는 옆동네는 오면 안 될 것만 같았는데 커서 보니 서로 부침개 돌려먹는 이웃 같아서, 격 없는 친구 같아서 좋다. 요즘은 부처와 예수가 게슈탈트 붕괴처럼 그분이 그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찌 되었건 어른. 진정한 어른이다.

길상사는 밝아서 좋았다. 무서울 정도로 장엄한 대자연 중턱에 있지 않아서 좋았고 적당히 평화롭고 인간냄새가 나서 좋았다. 고독이 고독 그 자체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고 법정 스님 말을 빌리자면 절대적인 있음 안에서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진지한 성격 탓에 고요와 한적을 즐기고 사랑하는 나지만, 심각하고 거대하며 잡아먹힐 듯한 것들 앞에서는 나 자신을 잃는다. (그런 경향이 다분하다. 쫄보다.) 바다 근처나 절벽 위에 있는 절들을 가면 그렇다. 존재해 있음을 망각한다. 세상과의 단절보단 나와의 단절 느낌. 나의 영이 나를 떠날 것만 같은 느낌. 인간세상 같지 않음에.. 편하지 않아서 그런갑 보다. 그럴 때면 중생이니 인간이니 그러려니 한다. 거기 사는 스님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크으은 어른일까.

절에 가면 대웅전 한번 들어가 보지 못했다. 굉장한 곳 같아서 용기가 안 났다. 오늘은 대웅전인지 극락전인지도 모를 그곳에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길래, 따라 신발을 벗고 방석을 가져다 앉았다. 아 따뜻했다. 바닥이 정말 따뜻했다. 공기가 따뜻했다. 내 심장 소리가 들렸다. 저어어기 옆에 젊은 커플과 뒤에 남자가 멍 때리고 어떤 아줌마는 눈감고 합장하고 기도.. 한다. 나도 따라 눈감고 멍을 때리는 건지 뭘 떠올린 건지 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그걸 했다. 아 좋았다. 정말 좋았다. 요가한다고 가부좌 틀고 명상을 하던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적막이 날 해방 시켰다. 처음으로 절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종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는 오만한 말을 했었네 내가. 거추장스러운 건 믿음도 세상도 아니었다. (아마도) 가진 것이 너무 많은 나였다. 가진 것도 아니고 가지지 못한 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나는 뭘까. 삶은 뭘까. 홀로 있는 내 자리를 되찾는 것일까 그 여정이 삶일까. 만나는 수많은 인연은 무엇일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어느 어른의 말씀처럼 그렇게 하루하루를 홀로 묵념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만난 새끼 고양이를 만지지도 못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걔도 겁이 많고 나도 겁이 많아 환상의 짝꿍이었지. 어떤 인간이 옆에 앉아 미야옹 - 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애처로워 보였는지 예뻐 보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어느새 그 아가도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어쩜 돌계단 끝까지 따라 올라왔다. 저 녀석 나를 좋아하는군! 확신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없었다. 거기까지였다. 배웅도 안 해준 그 녀석이 미웠다. 해가 질 즈음 절을 떠나려니 그 녀석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어쩌겠나. 어쩌면 그 녀석은 한 번도 나를 따라온 적이 없었을 수도 - 다시 생각해 본다. 내려올 때 난 손에 무얼 쥐고 내려왔나. 지금 내 손엔 무엇이..

해피성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