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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Nov 26. 2019

피터팬에게서 온 편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어? 편지 왔다! 나한테 편지가 왔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우편함을 살피는 첫째 아이의 가장 큰 기쁨은 자신에게 오는 편지를 받는 것. 다양한 친구들이 아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유니콘, 피터팬, 심바, 산타 할아버지, 엘사 등등... 우편함에 아빠, 엄마 이름으로 된 우편물만 오자, 자신도 편지를 받고 싶다는 아이 말에 시작된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우와~누구한테 왔어?"


"피터팬!!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해적 선장이랑 싸우고 오느라 빨리 쓸 수가 없었데. 근데, 엄마 피터팬은 어디 살아?"


"피터팬? 네버랜드에 살지~ 웬디랑 친구들이 하늘로 날아간 거 알지?"


"아.. 그럼 난 못 가겠다. 날아갈 수가 없잖아.. 아, 엄마!  나중에 팅커벨 가루를 뿌려달라고 하자. 그럼 갈 수 있잖아?"


"그래, 근데 날 수 있겠어? 엄만 조금 무서울 것 같은데.."


"지금은 무서울 것 같은데.... 조금 크면 될 것 같아"


매번 편지가 올 때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간다. 동생에게 우연히 아빠가 쓰는 아이의 편지 이야기를 했더니, 멕시코 영화 '사랑해, 매기'를 추천해 준다.


<사진=네이버 영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발렌틴에게 어느 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가 놓고 간 것은 아주 작은 여자 아기. 그러면서 좌충우돌 서툰 아빠이야기가 시작된다. 발렌틴의 딸 매기는 일주일에 한 번 씩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세계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바쁜 엄마가 매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물론 편지는 아빠 발렌틴이 매기를 위해 쓴 것. 아이를 버린 엄마를 대신해서 말이다. 발렌틴이 만든 상상 속 엄마의 사랑으로 매기는 그 누구보다 밝고 행복하게 자라 간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말할 수 있는 건, 영화가 끝난 후 아이 아빠와 나는 휴지로 연신 눈을 닦으며,  '이렇게 훅 들어오다니.. 너무 슬프다'를 연발했고, 아직도 우리가 꼽은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다. 아빠 발렌틴이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로 인해 딸이 상처 받지 않도록 편지를 썼다면, 내 옆에서 눈물 찍는 이 아빠는 아이의 잠깐의 행복한 웃음을 보기 위해 편지를 쓴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유니콘에게 편지를 받았다며 자랑하는 모습,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상상하며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컴퓨터를 켜고 주인공 그림을 찾아서 붙이고, 글을 쓰고, 인쇄를 한 후 아이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밖으로 나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기까지, 다소 귀찮을 법도 한데 말이다.


"안녕! 나 라푼젤이야.

... 내가 나쁜 마녀 때문에 힘들었었는데, 요즘은 참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요즘 고민이 있어. 내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서 불편할 때가 있거든. 그래서 머리를 좀 짧게 잘라보면 어떨까 고민 중인데... 너 생각은 어때? 나 머리 잘라도 잘 어울릴까? 너도 나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다며? 머리가 길면 정말 예쁘게 보일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땋을 수도 있고, 좋지? 그런데 혹시 너도 나만큼 너무 길게 기르는 건 별로 안 좋을지도 몰라. 불편한 것도 참 많거든... 계속 머리 얘기만 했네. 호호. 언젠가 우리 만나서 더 재밌는 얘기 많이 많이 해! 사랑해, 친구~"


아이의 편지 속 주인공들은 늘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보고 싶어 하며, 아이를 응원한다. 그리고 때때로 아빠의 마음을 담아 조심스러운 충고도 해 준다. 머리를 잘라보는 건 어떨지,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등등... 아이가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읽은 편지를 통해 아이는 좀 더 진지하게 상상하고 고민한다.


그런가 하면, 영원히 잠든 딸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아빠도 있다.


너는 지금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자고 있으니, 내가 눈을 떠도 너는 없으니, 너와 함께 맞이할 아침이 없으니. 그래, 네가 어렸을 때 해주지 못했던 굿나잇 키스를 이제 네 영혼을 향한 편지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생전에 너에게 해주지 못했던 일.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루었던 말들을 향불처럼 피우련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바쁘다는 이유로 딸의 굿나잇 인사를 목소리로만 듣고 지나친 그 시간이, 딸을 잃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한 지 느낀 작가가 하늘로 간 딸에게 한 장 한 장 편지를 쓴다. 우편 번호 없는 편지를 부치는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의 아빠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아이를 버린 엄마를 대신해서 쓰는 편지도, 딸을 잃은 슬픔을 독백처럼 토해내는 편지도 아니지만, 아빠는 오늘도 진지하다. 아빠가 표현하는 사랑이 혹시라도 부족할까 봐, 만화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오늘도 이야기한다. '너를 사랑해'


epilogue..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사촌언니가 놀러 왔다. 아이는 갑자기 편지통을 꺼내 오더니 언니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언니, 나 라푼젤한테 편지 받았다~"


언제까지 아이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싶어 내심 궁금했던 참이라 조카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진짜? 이모! 진짜예요? 진짜 라푼젤한테 편지 받았어요?"


하며 호들갑이다. 음.. 앞으로 3년은 더 쓸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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