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데어 Nov 04. 2019

엄마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원

목숨 1 / 라면을 끓이며 , 김훈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산책을 놀이터만큼이나 좋아하는 아이들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걷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시간의 산책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어슴푸레한 그 시간.


"엄마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 길도 예쁘고 조명도 예쁘고, 하늘도 너무 예쁘다. 그치?"

"응, 엄마 나도 좋아. 나는 이런 예쁜 곳을 아빠랑, 엄마랑 같이 걸으니까 너무 행복해."


뜻하지 않은 여섯 살 딸아이의 고백에 또다시 행복이 밀려온다. '같이'라는 그 말이 참 좋다.

 


문득 아이가 네 살 때 다이어리에 써 두었던 메모가 생각났다.


2017.09.27

"그러면, 우리 '함께' 먹는 거야"

요즘 아이가 애정 하는 단어- 함께


아이는 뭐든지 '함께'라는 단어를 붙이기 좋아했었다. '함께' 먹는 것, '함께' 보는 것, '함께' 노는 것... 아이가 젖먹이 아이였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함께'라는 기분을 요즘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아기에서 어린이, 그리고 점점 소녀가 되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의 30대, 40대, 그리고 50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함께' 우리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며, 삶의 '신비'를 느껴가며 말이다.


그 아이가 어려서, 분홍빛 잇몸에서 흰 싹 같은 앞니가 돋아나고, 또 말을 배우느라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종알거릴 때도 나는 이 진부한 일상 속에서 살아서 작동하는 삶의 신비를 느꼈다. 이 작은 신비들이 시간 속에서 쌓이고 또 쌓여 갓난아이는 여자로 바뀐다.

목숨 1 / 라면을 끓이며 , 김훈


때때로 젊음의 초록 초록함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이듦이 서글퍼질 때도 있다. 뭔가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길가의 막 돋아난 여린 잎만 봐도, '그래, 역시 어리니까, 예쁘구나' 하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갓난아이가 소녀가 되고, 여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봐주는 듬직한 어른이 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날이 더 많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이 옆에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그런 나이 든 어른 말이다.


다시 눈을 뜨고 이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들을 들여다보니, 거기서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누렇고 붉은 열매들이 열린다. 그리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시간 속에서는 덧없는 것들만 영원하다. 모든 강고한 것들은 무너지지만, 저녁노을이나 아침 이슬은 사라지지 않는다.

목숨 1 /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참 욕심 많고, 질투 많던 나도 많이 변했나 보다. 엄마가 된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가 자라고 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볼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이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도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 엄마가 꿈꾸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원이랄까.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