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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Oct 12. 2019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엄마, 목말라.."


아이의 작은 속삭임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이 이마를 짚어보니 뜨겁다. 39.4도. 해열제를 먹고 잠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열이 오른 것이다. 물과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아이를 눕혔다. 누워서 슬며시 내 손을 잡는 아이의 손, 뜨끈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의 열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 다시 누웠다. 감기..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수없이 겪었을 감기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하다, 첫째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감기에 걸린 날이 생각났다. 마침 신랑은 밤 근무여서 혼자 아이 곁을 지켰다. 열이 너무 올라 해열제를 먹였는데, 맛이 역했는지, 먹은 약을 다 게워냈다. 내 몸과 아이 몸에 묻은 아이의 토를 대충 닦고는, 우는 아이를 안고 얼렀다. 그리고 겁이나서 까운 곳에 사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열이 떨어지고 축 쳐져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있는데 친정 엄마가 들어오셨다. 알싸한 토 냄새가 나는 아이를 꼭 안은 채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다.


그렇게 첫 감기를 치르고 나서,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아이는 셀 수 없이 많은 감기를 치러내고 있다. 한 번의 감기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는 또 한 번 자라 있었다. 이번에도 아이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열이 난지 만 3일째가 되는 날, 신랑에게 물었다.


 "아이가 열이 잘 안 떨어지는 데 괜찮을까?" 


직업인 의사인 신랑이 말한다. 아직 만 3일째이고, 아이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니, 오늘까지 지켜보자 한다. 열도 점점 잡히고 있다고. 저녁이 되 아이가 다시 춥다고 하며 이불을 찾는다. 서둘러 열을 재어보니, 38.4도다. 성급하게 해열제를 먹이지 않기로 밤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신랑과 약속을 했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책도 읽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물수건으로 열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조금 일찍 재우고, 수시로 아이의 열을 체크했다. 다행히 열이 내리려는 지 아이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아이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너무 더워.." 


서둘러 열을 재보니, 36.5도. 아이의 잠옷이 땀에 흠뻑 젖어있다. 속옷까지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다시 눕혔다. 아이는 또 금세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오늘은 유치원 가도 돼?" 


마치 긴 잠을 푹 자고 깨어난 듯한 상쾌한 얼굴로 물어본다.  


"그럼" 


하고 대답해주었더니, 환하게 웃으며 유치원에 입고 갈 옷을 고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은가보다.


아이는 그렇게 이번 감기도 씩씩하게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퇴근을 한 아이 아빠가 어젯밤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말한다.


 "특히나 아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회복기에는 부모의 인내가 중요한 것 같아. 성급하게 해열제를 먹여 억지로 열을 떨어뜨리거나, 항생제를 먹이려 하는 경우가 많거든."


부모의 인내.. 그랬다. 어젯밤, '항생제를 먹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몇 번이나 삼켰었고, '해열제'에 손이 가려는 것을 몇 번을 참았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싸웠고, 평생에 힘이 될 수 있는 면역력을 조금 더 키워냈다. 엄마의 마음을 읽었을까. 잠들기 전, 아이가 기도를 한다.


"하나님, 오늘 감기에 걸렸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내일도 신나게 놀게 해 주세요."


엄마는 모랐지만, 아이는 노력하고 있었고, 또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 서간)   



그렇게 첫째 아이가 정상 생활을 되찾았을 즈음의 어느 날 새벽, 둘째 아이의 "엄마, 엄마"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몸이 뜨끈하다. 38.7도.. 오. 마이. 갓. 다시 또 시작.. 엄마는 아플 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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