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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Oct 14. 2019

우아함에 대하여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먼

"엄마, 엄마도 할머니가 돼?"

"그럼"

"그럼, 엄마도 할머니처럼 얼굴이 쭈굴쭈굴해져?"

"음.. 그럼... 손도 쭈글쭈글해질걸."


잠시 망설였다. 나도 언젠가는 쭈글쭈글한 얼굴과 검버섯이 핀 주름 많은 손을 갖게 될 거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쭈굴쭈굴'한 주름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과 어투로 대답해 주었다. 그랬다.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환영하며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나이 듦'인가 보다.


나는 우아하게 늙고 싶어

친구들과 나이 듦을 한탄할 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문득 내 머릿속의 '우아'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머릿속의 '우아함' 이 나와 전혀 다르다면, 나의 의지적 표현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나의 머릿속의 '우아함'은 영화 속 귀부인처럼 힘든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맞기고 커피와 수다를 즐기는 그런 우아함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아우라를 풍기는 그런 '낯선 세계'우아함도 아니다.


우아함 = 천천히 걷는 정도의 빠르기 '안단테'

우아(優雅)함은 한자 풀이를 해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우아(優雅)의 '우(優)'는 넉넉할 우(優) 자이다. 사람 인(亻) 변과 근심 우()가 합쳐진 자가 바로 넉넉할 우(優)이다. 근심, 걱정 많은 사람 곁에 서서 위로해 주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넉넉할까. 맑을 '아(雅)'는 어금니 아(牙)와 새 추(隹)가 합쳐진 한자로, 큰 부리를 가진 새가 어금니를 부딪쳐 내는 소리가 맑고 아름답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근심 있는 사람의 옆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의 넉넉하고 맑은 마음씨가 바로 '우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처함을 살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넉넉함이 있으면 태도도 여유로와진다. 식당에서 음식이 빨리 안 나온다고 '빨리빨리'를 외치는 모습은 절대 우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끊고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뱉어버리는 것 또한 우아하지 않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방을 앞서 던지는 태도 역시 절대 우아하지 않다. 우아함'한 템포 느리게'가 필요로 한다. 천천히 걷는 정도의 빠르기인 '안단테(Andante)' 정도의 속도라고 할까. 천천히 걸으면 보이지 않던 마음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가 들린다. 나와 상대방의 처지를 좀 더 살피고 귀 기울이는 것이 우아함의 시작이다.


사실 나의 '우아함'에 대한 짝사랑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나의 첫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아한'을 넣은 태명을 만들어주었고, 아이의 이름에도 '우아함'의 뜻이 담긴 '빛날 연(娫)'을 넣어주었다. 아이의 삶이 우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감정'의 문제다. 소모적인 감정의 문제에서 아이의 삶이 좀 더 평온하길 바랬다. 나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진다면, 아이의 세상은 좀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우아함은 세상과 편하게 지내는 것이다. 삶이 그대의 바지에 포도주를 쏟을지라도!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먼 (노상미 옮김)


우아함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 둘을 키워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장난감이 하나밖에 없다면 매싸울 일만 생긴다는 것을. 두 개의 장난감을 하나씩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그렇게 똑같이 나눠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로도 사이좋게 지낼 있는 방법을 매일매일 연습한다.


누나가 장난감을 혼자만 가지고 논다며 둘째 아이가 와서 칭얼대며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대뜸 달려가서 첫째 아이에게 훈계를 할 수도 있다.


 "동생이랑 같이 놀아야지!"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조용히 둘째 아이에게 누나에게 갖고 놀아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알려준다. 아이는 다시  쪼로로 달려가서 누나에게 물어본다.


"누나, 이거 갖고 놀아도 돼?"


와락 장난감에 덤벼들지 않고 한걸음 뒤에 서서 물어보는 동생을  누나도 양보한다.


 "갖고 놀고 싶어? 좀만 기다려."


하더니 잠시 놀고 바로 동생에게 장난감을 빌려준다. 아이들도 템포 늦춰주면,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물론 매일매일 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는다. 결국 싸움이 되어 둘 다 울음바다로 끝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연습해가며,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짐을 배워가고 있다. 아이들도 이렇게 틈만 나면 와락 다투는데,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리고 이해관계에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은 말할 것도 으리라. 마음먹고 보면 세상엔 불평할 일, 싸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어른들도 연습이 필요하다. 좀 더 우아하게 살기 위한 연습 말이다.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한 발짝 물러서 친절을 베풀어줄 너그러움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넉넉한 마음이 우리를 우아함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우리가 우아해진다면, 세상은 분명  조용해지고  평온해질 것이다.  


우아함은 가볍고 편안하게 걷게 해 주고, 다른 사람들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해 주며, 타인의 상냥함을 받아들이고 음미하게 해 준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차원에 우아함이 존재한다.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먼 (노상미 옮김)

 


안단테, 안단테... 나는 오늘도 우아함을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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