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데어 May 14. 2020

엉망진창인 날들과 반짝이는 날들

가끔은 제정신/  허태균

"오늘은 정말 엉망진창인 날이었어"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이 조용해진 잠깐을 틈타 신랑에게 이야기한다. 신랑의 위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조르기 시작한다. 나의 하소연은 결국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두 아이가 감기로 컨디션을 최악이었고,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는 낮잠 조차 제때 자지 못했다. 또 그래서인지, 아이는 계속 칭얼대었고, 그런 둘째의 방해로 유난히 첫째도 짜증이 많았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재웠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잠들면 안 돼..' 다짐했건만, 이내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잠이 들어버렸다. 문득 눈을 떠 보니, 새벽 1시, 늦었다. 지금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속상함은 잠시, 이내 곯아떨어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엉망진창인 날... 체력은 고갈되었고, 멘털마저도 질척 질척 깔끔하지 못하다. 뒷수습 또한 쉽지 않다.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뒷수습이란, 오롯이 엄마만의 휴식시간이다. 하지만 고갈난 체력과 멘털로 유일한 휴식시간인 밤 시간에 깨어 있긴 영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부모들에게 금기어나 다름없다. 특히나 소위 '모성애를 가진 엄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더더욱 큰일이다. 어쩌면 '육아 우울증'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아이는 축복이고 행복이다...라고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의 '행복의 기회'를 빼앗아 간 건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행복한 건데, 왜 난 이렇게 힘들까.


하지만 인정하자. 육아는 힘든 일이다. 육아는 행복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Daniel Kehneman)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은 양육에 대해 사실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돌보는 것은 TV보기, 쇼핑, 낮잠은 물론,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덜 즐겁다고 응답했다. 또한 심리학자 트웬지(Jean M. Twenge)는 아이의 유무와 부부의 행복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아이가 없는 부부가 아이가 있는 부부보다 결혼생활을 더 만족스러워한다고 결론지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시달리다, 잠시 집 앞 마트에 나가기 위해 현관문 밖을 나가는 순간, '휴우..' 이제야 살 것 같았다. 비록 아주 잠깐의 외출이지만, 홀홀 단신으로 바깥바람을 쐬는 그 자유란! 육아는 어렵고,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육아' 없는 삶을 선택하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답은 고민 없이 "아니오"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육아는 힘든 일, 행복하지 않은 일이라 열변을 토해놓고, 아니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분명 내 행복의 기회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없다면, 난 행복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빼앗아간 건 행복의 '기회' 지, '행복'은 아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싱글들의, 혹은 딩크족의 행복이 더 커 보이고 소중해 보이는 건 내가 가보지 못한 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보다 조금 더 좋은 상황을 상상하며 현실을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선택만큼, 현재보다 더 나쁜 선택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무한한 선택 앞에서 미래를 잘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안고 '하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나중에 선택의 결과를 알고 나서는, 마치 어떻게 될지 알았는데도 잘못 선택한 것같이 느낀다. 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항상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그 순간에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그래야 주어진 현실과 내가 선택해서 만든 현실에 좀 더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가끔은 제정신/  허태균)

엄마는 반짝이는 순간의 힘으로 엉망진창인 순간들을 버텨낸다. 그래서 육아의 세계는 행복하다.

때때로 육아는 짜릿하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내 삶이 이렇게 버라이어티 해질 수 있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롤러코스터 감정들을 느껴나 보았을까? 순간순간 아이들로 인해 짜릿하고 강렬한 행복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이가 나를 꼭 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해줄 때, 날 향해 천사 같은 미소를 활짝 지어 보일 때... 그 순간의 행복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보여주는 모습들로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힘든 부모로서의 삶을 반짝반짝 비춰준다. 육아의 세계는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과 엉망진창인 순간들을 오르고 내린다. 그리고 그 세계는 결국 행복하다. 엄마는 반짝이는 순간의 힘으로, 엉망진창인 순간을 버텨내기 때문이다.


또다시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고작 한 시간 사이에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밥을 먹였다. 그리고 번갈아 화장실을 가는 두 아이들의 뒤처리를 해주었고, 도망가는 아이들을 붙잡아 이를 닦아주었다. 겨우 한숨 돌리고 식탁에 앉았다. 아.. 내 커피... 커피를 내려놓고는 커피의 존재를 깜빡 잊었다. 오늘도 나는 식은 커피를 마신다. 내일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리라 다짐하면서..



이전 03화 우아함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