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다. 심쿵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난데없이 들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다. '예쁘다'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다른 세계 언어이다. 새로운 옷을 사 입거나, 새 구두를 신고 듣는 '예쁘다'라는 말도 엄밀히 말하면 '내'가 예쁘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옷이, 새로운 신발이 예쁘다는 말이니까. 그래서일까. 네 살 아이의 난데없는 '예뻐'라는 말에 엄마는 설렜다. 이건 너무 처량하지 않나... 싶긴 하지만, 정말이다. 정말 설레었다.
오랜만에 회사 동료들을 우연히 만났다.
"어머, 왜 이렇게 마른 거야?"
"아휴, 과장님이 더 말랐네요. 어머나.."
옆에서 듣던 다른 남자 동료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지금 서로 뭐 하는 거야?!"
여자 친구들의 세계다. 서로 부러워하고, 헤어 스타일이 예쁘다거나, 옷이 예쁘다고 경쟁하듯 칭찬해주는 게 여자 어른들의 친근함의 표시 일터. 아줌마의 세계도 간혹 이런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하다. 정말 친하지 않은 이상, 서로에 대한 '칭찬=부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특히나 전업맘의 세계에서는 '자존심'의 문제에 좀 더 민감해진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 수록 칭찬에 인색해진다. 나이가 들 수록 본인의 가치관이 좀 더 뚜렷해지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잣대가 좀 더 엄격해진다. '라떼는 말이야' 하며 상대방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자칫 자신이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나은 위치에서 나오는 '평가'와 같은 칭찬으로 보일까 봐 때론 칭찬을 주저하기도 한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성실한 아이의 숙제장에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칭찬에 조심스러워진다. 또한 상대방과의 경쟁심, 질투심 때문에 칭찬을 외면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하는 칭찬이 어색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혼자서 첫 발을 떼던 그때, 마치 커다란 세상을 발로 밀어낸 것 마냥 온 가족이 손뼉 치며 환호해주었다. 엄마 치맛자락을 당기거나, '앙' 하고 크게 울기만 해도 모두가 달려와 기꺼이 도움을 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스스로 일어나 세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심지어 내 밥은 물론 가족들의 밥까지 만들어 먹이는데도 그 누구 하나 칭찬해 주지 않는다. 어른이 될수록 부여받는 생의 과업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혼자' 힘으로 해내야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업들이 있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일들인데도, 어른의 세계에서 칭찬은 꽤 인색하다. 그래서 내 삶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잃어간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어른의 세계에서 칭찬은 꽤 인색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매일 같은 시간에 힘겹게 일어나 직장으로 향하고, 반찬 투정 없이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배우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잘한다', '잘 먹는다'는 칭찬은 뭔가 어색하다. 아이들에게는 입이 닳도록 했던 말들인데, 막상 배우자에게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쉽게 칭찬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감탄'과 '감사'가 그것이다. '우와~', '당신은 정말 멋져' 라거나 '고마워요'라는 표현은 상대방이 '내가 정말 잘하고 있구나'라고 확인할 수 있는 칭찬의 또 다른 말이다.
앞뒤 없이 신랑에게 카톡을 보냈다.
'늘 수고해줘서 고마워요'
곧 신랑에게 답이 왔다.
'나도 고마워'
옆구리 찔러 받은 '고마워'라는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의 뇌는 단순하다. 현실과 언어를 쉽게 혼동한다. 실제로 옆구리 찔러 받은 칭찬이든, 마음에 없는 칭찬이든 그 언어 자체로도 사람의 뇌는 '쾌감'과 '짜릿함'을 주는 '도파민'을 방출한다. 외로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게다가 가장 저렴한 방법, 바로 '칭찬'이다.
헨리 나우엔의 다음 말에 고개를 계속 끄덕인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왜 그렇게 깊이 감춥니까? 문을 두드리거나 전화를 걸어 그저 안부를 묻거나 서로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왜 알리지 않습니까? 따스한 미소와 위안의 말을 듣기가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선생님에게는 감사의 표시를, 학생에게는 칭찬을, 요리사, 청소부, 정원사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왜 우리는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거나 더 중요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서로를 모른 체 지나쳐 가야 합니까?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신현림)
인생을 살아내다보니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칭찬과 감탄, 그리고 감사에 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 나의, 당신의 삶엔 칭찬이 필요하다.
어느 날 아이의 옷에 달린 주머니를 보며, 물었다.
"우와, 우리 아이 옷에 주머니가 있네~ 주머니에 뭘 넣어볼까?"
역시나 가만히 날 보던 아이가, 짧게 이야기한다.
"음....... 엄마?"
오늘도 엄마는 심쿵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을 표현하는 말도 '칭찬'을 대신할 수 있겠다. '사랑해'라는 말만큼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감탄과 고마움을 잘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