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데어 Oct 21. 2020

엄마는 다 알아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 문득 엄마가 말씀하신다.


"넌, 나중에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글이나 써봐.."


툭 던지신 말인데, 뜨끔했다. 내 마음을 어찌 아셨지? 때때로 드는 공허함이 있었다. 한 때는 공부 잘한다,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공부해서, 그렇게 일해서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볼 때 문득문득 떠오른다. 맥락도, 앞뒤 상황도 없이 그럴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생각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고 나면, 내 일을 찾아야겠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글'을 쓰는 일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글을 쓰고 싶다'라고 얘기해 본 적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아이는 오랜 잔기침 때문에 대학 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다. 객담검사가 필요한데, 아직 어린 아이라 가래를 뱉지 못했다. 그래서 코로 얇은 관을 넣어 가래를 채취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검사실에 가서 아이를 꼭 안았다. 그 틈을 타 간호사는 아이의 코로 기다란 관을 넣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끝났다'며 아이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간호사가 당황한 듯 이야기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해서.. 가래 받는 통을 연결을 안 했네요...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쩌죠?"


헛... 처음은 모르고 검사를 받았다지만, 이제 아이는 안다. 아니 엄마도, 간호사도 안다. 처음처럼 아무것도 모른 척 고분고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간호사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물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는 이전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울며 격렬하게 거부했다. 강제로 아이를 붙잡고 검사를 해 보려 했으나, 엄마 힘으로는 아이를 제압할 수 없었다. 간호사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고, 갑자기 네댓 명이 몰려오더니 아이의 사지를 붙잡았다. 그리고 코에 관을 '쑤셔' 넣었다. 1초, 2초나 됐을까? 아주 짧은 시간의 시술이었지만, 끝난 후에도 아이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꼭 안고 진정시키느라 간호사에게 항의를 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 아빠를 만났다. 검사 잘했냐고 묻는 신랑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아이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이만큼 나 역시 긴장을 했었다.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를 모질게 붙잡았던 미안함과 아파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나도 꽤 힘들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검사는 잘 받았냐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받았다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드렸다. 오늘 아이가 많이 힘들었다고, 그래도 검사는 잘 받아서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엄마가 말씀하신다.


"아이고... 네가 힘들었겠다... 고생했다."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였을까. 엄마 이야기를 듣고 또다시 눈물이 났다. 엄마라서, 엄마인 내 마음을 아셨던 걸까. 아니면 엄마라서 당신 딸의 마음을 아셨던 걸까.


엄마는 다 알고 계셨다. 학원 간다며 나와서 친구와 놀러 간 것, 친구랑 약속이라며 몰래 데이트를 갔던 것,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고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도... 그저 엄마는 모른 척하고 계셨던 걸까. 엄마가 되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아이들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라는 것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엄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먼저 살아낸 인생의 선배 역시 엄마였다. 지금껏 나는 그런 엄마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엄마는 몰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을까.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알 듯하다. 아이를 키우며 문득문득 '아, 우리 엄마도 그러셨겠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철이 들면서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아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나도 엄마가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를 알 수 있는 때가 올까. 앞서 걷고 계신 당신의 삶을 부지런히 좇아가 본다. 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엄마를 알가야겠다. 그리고 또 미래에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땐 몰랐지만, 엄마는 다 알고 계셨다."


라고...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이전 06화 우리네 삶엔 칭찬이 필요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