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방에 있던 첫째 아이가 갑자기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팔꿈치를 어딘가에 부딪친 모양이다. 다행히 상처는 없다. 아이를 안고 "엄마 손은 약손~" 하며 아픈 곳을 살살 문질러 준다. 아이는 곧 괜찮아졌는지,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둘째 아이도 이내 다른 놀잇감을 찾아간다.
그리고, 잠시 뒤... 이번에는 둘째 아이가 찡찡 거리며 나온다.
"저기에 부딪쳤어"
마침 설거지 중이어서, 아이가 아프다는 곳을 눈으로 괜찮은지 확인했다.
"괜찮아. 곧 안 아플 거야, 알겠지?"
갑자기 아이가 찡찡거리는 걸 멈추고 엄마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왜 엄마 손은 약 손 안 해줘?"
아이의 말에, 서둘러 고무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엄마 손은 약 손~' 하며 아프다는 곳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품 속 아이가 강아지 마냥 "낑낑" 소리를 낸다.
"이제 다 나았다~"
하는 소리에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놀이방으로 뛰어간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물론 내 손은 약 손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만지는 건 무엇이나 망가뜨리고, 부서져버리는 '똥손'에 더 가깝다. 하지만, 아이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질 때면, 내 손이 정말 '약손'인가 싶기도 하다. 꼭 안고 '엄마 손은 약 손'하고 반복해 얘기해주면, 어느새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고, 곧 편안해진다. 아이의 아픔을 낫게 한 것은 물론, '엄마 손'이 아닌 '시간'이다. 엄마의 약손으로 쓰담 쓰담해서 나을 아픔들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아픔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픈 곳이 생기면 엄마를 찾고, 엄마의 품과 따뜻한 손길에서 정말 아픔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아팠던 상처도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그때만큼 아프진 않다. 그래서 시간은 약이다. 그건 진리다. 하지만, '엄마 손은 약 손'을 찾는 아이들을 보며, '아픔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꽤 중요함을 깨닫는다. 아이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따뜻하게 만져주면, 아이는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아이들은 엄마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만들어가고, 더 나아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결과만큼, 상처가 아무는 시간, 즉 과정도 중요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마음의 약손'이 되길 바란다. Photo by Aditya Romansa on Unsplash
숨진 대원이 암흑 속에서 고립되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많은 소방대원들이 암흑과 화염 속에 고립되어 있다가 동료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바다의 기별 / 김훈)
돌아보면, 아픔의 시간에는 늘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아픈 만큼 함께 아파해주고, 곁에서 힘이 되어 준 이들로 인해, 나는 또 다음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전엔 몰랐던 '소중함'과 '감사함'을 가지고 말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속 누군가는 아픔을 겪고, 또 누군가는 그 아픔들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내 손이 정말 '약손'은 아니지만, 아파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좀 더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약손'은 될 수 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인기척'이다. 당신 곁에 내가 있다는 인기척..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상처를 견디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약'인 시간이 일을 한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더욱 단단한 나를 만든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아픔의 시간을 위로하는 '약손'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