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데어 Aug 10. 2020

남편들에게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제 정말 한계가 온 것 같아"


친구의 하소연이었다. 씩씩하게 아침부터 아이들이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독박 육아를 하며, 틈틈이 일도 하는 야무진 엄마였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내일 아침 만나자"는 인사가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러웠다. 하루 종일 두 아이를 힘겹게 돌보고 잠자리에 든 후에도 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아빠는 퇴근을 했다. 아이 엄마의 말처럼 '모든 일이 다 정리된 후 평화의 시간'에 신랑은 퇴근을 했다. 하지만 신랑의 일에 대해 너무 잘 알기에 신랑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신랑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걸 알기 기에 신랑에게 좀 일찍 퇴근해달라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한계에 온 것 같다했다. 친구는 지쳐 보였다. 몸도 마음도...


착한 엄마였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랑을 위해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신랑에게 도와달라 하지 못했다. 자기 때문에 신랑이 '희생'하는 게 싫다 했다. 오롯이 아이도, 집안 일도, 신랑의 스트레스까지 모두 안아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참 착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너는... 괜찮니?"


안 괜찮은 것 같단다. 슬펐다.

힘든 마음이 느껴져서...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본인은 비어지는 느낌일 게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부탁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이 힘들 바에야 차라리 내가 힘든 게 편하다는 착한 엄마였다. 하지만, 희생만 하는 착한 엄마는 존재할 수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존재할 수 있어도, 그 존재가 계속 유지되긴 어렵다.  


나 역시 한 때 그랬었다. 워킹맘을 정리하고 전업 주부로 나섰을 때, 육아와 집안일은 오롯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밖에서 일하는 신랑에게 집안일을 부탁하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는 신랑의 손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려 보냈다. 출근길에 지저분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해요"라고 했더니, 신랑이 말했다.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건데, 뭐가 미안하냐고... 그랬다. 육아와 집안일은 '당연히' 전업주부만의 것은 아닌데, 마치 당신의 일이 아닌 것을 부탁하는 것 마냥 미안해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육아와 집안일의 무게를 혼자서 온전히 지고 있으면, 엄마는 지칠 수밖에 없다. 마치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 위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처럼 전업주부의 반복되는 하루는 '행복'보다는 '형벌'에 가깝다. 이 반복되는 일상이 '행복'이 되려면, 엄마에겐 '충전'이 필요하다.  큰 도움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매일 애쓰는 아내를 도우려는 남편의 작은 몸짓, 그런 아내에게 작은 '감사'의 표현이면 아내는 위로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 함께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동지애'만으로도 엄마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하루 일과 중 잠시 동안,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은 괜찮은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아내, 엄마, 딸 또는 며느리가 아닌 '나 자신'을 나 스스로 주목해 주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힘겹게 밀어 올리던 커다란 돌덩이는 그냥 의미 없이 반복되는 돌덩이가 아닌 아이들과 나의 시간의 무게라는 것으로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그리고 엄마가 성장하는 시간의 무게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고, 또 감내하다 보면, 결국 작은 지푸라기 같은 무게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작은 아이의 투정에도 화를 내게 되고, 신랑의 조금 늦은 퇴근에도 짜증을 부릴 수밖에 없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가정'이라는 한 배에 탄 '동지애'를 발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남편의 '희생'이 아닌 '참여'를 요청해야 한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선장이건, 선원이건, 요리사이건 물을 퍼내야 한다. 엄마의 SOS에 외면하는 아빠는, 남편은, 감히 말하지만 무책임하다. 여기엔 핑계가 없다. 가족 안에서 서로의 존재에 감사해하며, 서로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 이들의 모임이 바로 '진짜 가족'이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편님들, 그때의 그 마음을 기억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시 중에서)


주룩주룩 오늘처럼 비가 오던 날, 우리는 한 때 한 우산 아래 있었다. 한쪽 어깨가 흠뻑 젖어도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 한 때의 연인과 '한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편님들, 그때의 그 마음을 기억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진 출처

Photo by Ryan Holloway , Ben Koorengevel on Unsplash


이전 09화 이게 다 체력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