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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Jun 25. 2020

엄마의 꿈꾸는 시간

김미경 / 엄마의 자존감 공부

"엄마, 엄만 어렸을 때 꿈은 모였어?"


문득 아이가 물어본다.


"응? 엄마 꿈? 음.. 글쎄... 엄마는 어렸을 땐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왜?"


"음.. 엄마는 뭐를 가르쳐주는 게 재밌었거든"


그랬다. 어렸을 때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커다란 칠판 앞에서 또각또각 가지런하게 글씨를 쓰고, 작은 막대기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커다란 노트를 펼쳐,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출석 체크하는 모습도 뭔가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엄마야?"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나에게 아이가 다시 물어본다.  


"응, 엄마는 집에서 너희들을 돌보는 게 가장 좋았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거든다.


"원래 엄마는 아주 크고 멋진 회사에 다녔었어. 근데 너희들을 돌보고, 함께 있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거야."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비록 지금은 '그냥' 엄마지만 한 때 '크고 멋진 회사의' 커리어 우먼이었다는 것을  명의 가족 중에 최소한 한 사람은 기억하고 있다는 위로 말이다. 정작 본인인 나는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느끼는 허탈감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는 물처럼, 엄마의 시간은 허탈하게 흐른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도 나이를 먹었다. 마치 모래 시계같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모래처럼, 엄마의 시간을 아이에게 내어주고, 엄마는 점점 비어져간다. 눈가엔 주름도 늘어났고, 손도 꽤 거칠어졌다. 나의 이름은 사라졌고, '누구누구의 엄마'만이 남아버렸다. 이젠 나의 꿈이 아닌, 아이의 꿈을 꾸고 있다. 이대로 '나'는 사라지는 걸까.  


.......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사라졌다.

마치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태어나지 않았던 듯하다.


2년 후 나는 다시 나를 소멸시킨다.

다른 아이를 가진 것이다.

..............


(앨리스 노틀리(Alice Notley), 'the baby is born out of a white owl's forehead' 중에서 )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다녀온 아이 아빠가 신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엄마들이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라며, '한 때는 잘 꾸미고, 자기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다들 애 보느라 바빠서 그렇지. 집 앞 놀이터이기도 하고..."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 역시 비슷비슷한 엄마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아이들이 자라기 위해선 누군가가 계속 시간을 흘려보내 줘야 한다.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이모님 등의 시간이 쌓여, 아이들은 성장해 간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스스로 시간을 채우는 법을 배울 것이고, 점점 엄마로부터 독립해 나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엄마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엄마는 틈틈이 자신의 시간을 내 안에 채워가야 한다. 엄마의 시간으로 아이들이 자라는 것처럼, 엄마도 더디고 느리지만 차곡차곡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며 자라가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이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나만의 꿈을 꾸는 시간이다.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내 안에 채워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에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소멸되지 않기 위해, 내 안에 시간을 채우는 시간 말이다.


"지금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참 중요한 시간이에요. 아이가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키우는 시간을 지금 엄마가 주는 거니까. 그러니 이 귀중한 시간을 그저 희생하는 시간, 답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름을 붙여봐요. '잠룡의 시간'이라고. 멋진 용으로 잘 날기 위해서 물속에 숨어서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렇게 내 시간에 다른 이름을 붙여주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돼요. 그리고 엄마 자신도 용답게 살게 돼."

(김미경 / 엄마의 자존감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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