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엄마, 이것 좀 탱크로 만들어줘"
잠시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둘째 아이가 다가와서 이야기한다. 얼마 전 선물로 사준 로봇 인형이다.
"아.... 그래.. 해보자"
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 아빠가 늘 변신시켜주던 장난감이라, 어렵기만 하다. 할 수 없이 유투브를 찾아 조립 방법을 따라 해 본다. 그래도 어렵기만 하다. 한참을 장난감을 붙잡고 있다가 드디어 '탱크'가 완성됐다. 신이 난 아이는 탱크를 가지고 쪼르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휴..."
다시 한숨을 돌리고 책을 들었다. 서너 문장이나 읽었을까. 아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 이것 좀 로봇으로 만들어줘"
'음... 그래, 나는 좋은 엄마니까...'를 되뇌며 다시 아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무장한 로봇과 꽤 긴시간 씨름 아니 사투를 벌였다. 문득,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불길한 신호다. '전업 주부'로의 정체성과 '나'의 자아실현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생각의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감에 빠져버리는 수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들기 바로 전, 헤어 나와야 한다. 지금껏 살면서 배운 값진 교훈 중 하나다. 지금 내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 말이다.
저녁 식사 시간, 함께 식사를 하며 마주 앉은 신랑에게 오후 일을 털어놓았다.
"오늘,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어. 아이 로봇을 가지고 낑낑 대며 한참 앉아있었거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신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한다.
"나도 가끔 그럴 때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이랑 일 관련 이야기하다가, 집에 오면 갑자기 '미니 특공대' 볼트가 되어 있는 거지..."
둘 다 큭큭대며 웃었다. 어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아이들의 세계로 '갑작스러운' '몰입'과 함께 들어가야 하는 신랑의 고충이 고맙게 느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잠자리에 드는 시간.
"엄마, 우리 안고 자자. 계속 안고 자자."
첫째 아이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한다. 아이는 그렇게 나를 꼭 끌어안은 채 금세 잠이 든다. 문득 첫째가 세 살 때 일들이 생각났다. 둘째를 임신해 배가 불러있었던 탓에 안지 못하고 팔만 배고 재웠던 때가 생각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어린 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 옆자리를 양보했던 첫째의 마음도 떠올랐다. '아직도 엄마의 품이 좋은 어린아이인데... 너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다. 내가 가진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매일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 뿐인가. 단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배우자와 아이들이 내게 그렇듯이 말이다.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일 거라 믿는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슴푸레 해가 지는 저녁 시간, 즐겨 듣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가 오늘따라 스르륵 마음으로 들어온다. 매일 같은 멘트로 시작하는 오프닝인데, 오늘따라 마음이 푹푹해진다. 토닥토닥... 그래,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구나...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말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존재의 차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네.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야.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Photo by Bruno Aguirr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