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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Sep 18. 2019

나의 취향 찾기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 최고요

이사를 앞두고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하나에 관심이 생기면, 두, 세 권의 책들부터 먼저 구입하는 습관이 또 발동했다. 그렇게 세 권의 책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단순함의 즐거움'(프랜신 제이) ,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최고요) , '혼자 있기 좋은 방' (우지현). 실용서를 좋아하지 않아 '인테리어'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들을 골라 주문한 것이었다. 정말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 이 책들을 읽다 보니, 문득 '내 취향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취향이 있었던가.


지금껏 '취향'이라는 것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비슷하게는 '취미' 정도? 나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이력서에 고민 고민해서 써넣은 나의 취미는 '겨우' 독서였다. 물론 그건 정말이었다. 문제는 특별한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써넣는 게 '독서'라는 거였을 뿐. 아, '이상형'도 생각해봤었다. 보통의 패션 스타일을 가진 보통의 남자가 나의 이상형이었다. 이것도 정말이다. 당시 '대'유행이었던 맨투맨티와 면바지, 그리고 구두와 운동화 그 중간쯤의 '닥터마X' 신발 정도만 신으면 되었다. 이상형의 남자가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등은 사실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패션 스타일을 고민해 본 적도 있다. 그냥 평범하게 튀지 않는 정도의 스타일이 내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었다. 이것도 정말이다. 과감한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았기에, 실패보다 쉬운 길을 선택한 결과였다. 옷장 안엔 블랙을 비롯한 무채색의 컬러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니, 심각해진다. 나는 정말 취향이 있었던가.


질문을 두려워했던 세대


2010년, G20 서울 정상회담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 회견 중 한국 기자들에게 발언권을 준 적이 있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1초, 2초, 3초... 드디어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손을 든 기자는 한국이 아닌 중국 기자라는 것을 알고 다시 당황스러워진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바마 대통령은 공정하게 한국 기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다시 한국 기자의 질문을 기다린다.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1초, 2초... 하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결국 발언권은 아까 손을 들었던 중국 기자에게 넘어가버렸다. 그 영상을 보는 내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심장이 벌렁댔다. 중,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누구 질문 없니?" 하고 재차 묻는 선생님과 조용한 교실. 결국 선생님은 억지로 누군가를 지목할 것이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린다. 그랬다. 그땐 질문이 없는 학교, 선생님 말씀만 받아 적는 수업 시간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고, 표현되지 않은 생각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나의 생각이 오롯이 표현되는 '취향' 조차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지 못했고, 그저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취향 :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표준국어대사전)


언젠가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부끄러운 듯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었는데, 카메라 앞에 선 두 친구들의 돌변한 태도에 깜짝 놀랐다. 온갖 익살스러운 표정과 포즈로 몇 번의 사진을 찍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얌전하게 다가와 "고맙습니다"하며 카메라를 받아간다. "언니, 요즘 애들은 다 그래~" 옆에서 나의 당황함을 눈치챈 동생의 말이다. 흘러간 세월을 이렇게 당황스럽게 느끼다니.. 내가, 아니 어쩌면 우리 세대들이 갖지 못한 그들의 '당당함'이 훅 들어왔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과

보고픈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면

그것이 바로 나의 집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 최고요)


그랬다. 취향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하는 것,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취향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솔직함과 당당함 뿐이었다. 이토록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나에겐 왜 이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취향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남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어느 순간 '반짝' 하는 순간이 있다. 대화 속에서, 행동 속에서, 그리고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어느 순간 반짝이는 그 사람만의 취향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취향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매력을 찾는다는 것과 동일한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취향의 부재는 위험하다.


자신 좀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취향 찾기가 좀 더 쉬울지 모른다. 나에겐 그런 과정이 부족했다. 핑계 같지만, 거리를 나가면 모두가 비슷한 옷, 비슷한 가방을 메고, 비슷한 노래를 들었던 'X세대'인 나에겐,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평범하게 살다 보니, 나의 색깔을 찾지 못했고, 나의 취향의 부재는 나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변하는 유행을 쫓아다니기에 바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시간, 물질, 감정들이 소비되었다.  


인생에서 '기호'를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의 평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기호가 아닌 주어진 기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기호가 없는 사람처럼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들에겐 타인의 조종에 의해 흥분하게 될 소질이 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  소노 아야코 / 김욱 옮김  )  




이사를 가서 더 좋은 집을 꾸미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취향이 없다'라는 팩트 폭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젠 나만의 취향을 찾아보고 싶다. 내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그 과정을 통해 내 삶에서 좀 더 반짝이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많이 늦었지만, 나를 찾는 과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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