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임신하면서 친정집 앞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직장을 다니던 나에겐 달리 대안이 없었다. 내게는 세 달이라는 출산 휴가와 1년이라는 육아휴직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마음 편히 떨어지기에는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출산 바로 전, 친정 아파트의 바로 앞 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침 출근 전 아이를 맡겨야 했기에, 다른 고민도 없었다. 부동산에서 그 중요하다는 입지? 직주근접? 투자가치? 등은 고려도 안 했다. 직장맘에게 중요한 건 무조건 '친정 근접' 이것 하나였다.
사실 신혼집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예산'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었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직주근접', 그것도 아내인 '나의 직주근접'이 두 번째 고려사항이었다.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서울 시내 아파트 카테고리를 가격 순으로 오름차순 정렬시킨 다음, 가장 편하고 짧은 시간에 회사에 오고 갈 수 있는 곳을 정하면 되었다. 건강한 성인 남녀가 사는 집이야 어디든 문제가 되겠는가.
그리고 5년이 지나, 네 식구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누구처럼 단단한 워킹맘이 되지 못해 전업 주부로 전향했다. 큰 아이가 6살 학령기(!)에 접어들고, 둘째가 3살- 육아가 조금 편해지니, 이사 생각이 났다. 시작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자라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내면 낼 수록 '좋은' 환경은 수많은 가지를 쳐나갔다. 주변에 유해 환경이 없어야 하며, 아이가 유치원, 초등학교를 통원하기 가까운 곳, 이왕이면 중, 고등학교까지 다녀야 하니 학군도 좋은 곳, 그렇다면 학원 인프라가 좀 더 잘 갖춰진 곳... 이제 두 돌이 갓 넘긴 아들이 뛰어다녀도 민폐가 되지 않는, 층간소음이 없는 곳도 아주 중요하다. (단언컨대,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윽박지르지만 않아도 가정은 좀 더 평화로워 질 것이다.) 그리고 신랑의 출퇴근 시간도 중요하다. 길이 많이 막혀도 한 시간 이내여야 한다. 출퇴근 거리와 행복지수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통계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제 결혼 5년 차가 되니 자산도 불려야 한다. 몇 년 후 되팔더라도 손해보지 않는 곳, 이왕이면 좀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점점 머리가 복잡 복잡해졌다. 내 평생 서울 지도를 이렇게 많이 들여다보게 될 줄은..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집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얼토당토 한 가격으로 내놓은 곳이 다반사였고, 혹 고심 끝에 계약이라도 할라치면, 다시 금액을 올려버리거나, 매물을 들여놓기 일쑤였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피폐해졌고, 나 역시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루에도 머릿속에서 서울 지도를 수십 번 그렸고, 꽤 유명하다는 부동산 인터넷 카페를 하루에도 네댓 번 들락날락거렸다.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부모의 머릿속 컨디션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자신들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엄마의 상태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다. 엄마의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옮겨간다. 아이들의 짜증이 늘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엄마에겐 놓치면 안 될 아주 중요한 신호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고맙게도 아이들의 신호에 다시 돌아보니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주고 싶은 게 첫째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온통 땅 값 오를 곳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집을 사려는 이유는 돈을 벌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투자로 부르든, 투기로 부르든 돈을 벌려고 이사를 결심했던 건 아니었다. 다시 원점에 돌아와 생각하고 나니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몇 년 후 집값의 시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에 흡족한 정도의 집값을 지불하고, 혹 떨어지면, 쭉 살고, 오르면 오르는 대로 좋은 거였다. 그렇게 '가치 재정립'을 하고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먹고 얼마 안 되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계약을 했다. 드디어 우리가 살 집이 결정되었다.
포털 메인에 자주 등장하는 어느 지역 집값 상승 뉴스, 신고가 기록 등등의 뉴스들이 전업주부인 나도 재테크의 수단으로 '부동산'을 보게 만들었다. 아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생애 첫 대출을 안고 산 집을 팔고 보니, 불로소득이 꽤 된다는 경험이 '부동산 = 재테크'라는 등식을 받아들이게 했다. 월급만 모아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돈을 집을 사고팔아 벌었다는 성공에 대한 경험이었다. 아는 친구는 어디 분양을 받아 돈 좀 벌었다더라 하는 얘기에, 나도 이번 참에 좀 더 고민해서 더 좋은 수익률을 올려보자는 욕심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아온 것은 피폐해진 삶이었다. 머릿속엔 온통 부동산 생각이고, 핸드폰 알람 창엔 부동산 맞춤 뉴스가 계속 깜빡였다. 이게 '돈'의 본질인가. 처음엔 단순히 물물교환의 수단이었을 뿐인데, 인간은 그 '돈'에 얽매여 '돈'에 소외당하는 것 말이다.
물론 내 삶에 '돈'은 정말 중요한 존재다. 없으면 불편하고, 속상하니까. 하지만, 내 삶에 '돈이 많은 것' 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가족'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다. 전문가들도 오락가락한다는, 예측 불가의 짒값에 집중하기에는 지금 이 순간들이 너무 아깝다. 물론... 돈도 많으면 좋을 거다. 그랬다면, 나의 세 번째 집 구하기가 좀 더 수월했으려나...
글을 쓰기 전, 둘째 아이를 재우기 전,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00아, 00 이는 엄마의 소중한 보물이야"
"응? 보물?"
하며 솔깃하는 아이. 이제 두 돌을 넘긴 아이가 보물이 뭔지 아는 걸까.
"응, ㅇㅇ는 보물이 뭔지 알아?"
하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응, 돈.. 큰돈"
헛...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더듬더듬 큰 보물은 큰돈이라고 누나가 말했단다. 아직 엄마의 수련이 부족한가 보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