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소 피오렌티노의 음악천사
물놀이를 좋아하는 수연이를 위해 근처 호텔 수영장을 찾았다. 한 번 물에 들어간 수연이는 거진 두 시간 동안 물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물론 세 살 아이가 물속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튜브나 구명조끼에 의존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 수영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혼자 힘으로 다녀오기 정도다. 더 놀고 싶다는 수연이를 겨우 달래 방으로 올라왔다. 간단한 간식을 먹이고 조금 쉬게 하려고 침대에 눕혔는데,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든다. 그렇게 잠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본 아빠의 한마디,
발랄한 천사 같지 않아?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잠든 아이 = 천사'의 진짜 의미를 알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세 살 아이라면, 아이가 눈을 뜨고부터 잠들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일어나 화장실에 데려가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놀아주고, 간식 먹이고, 또 화장실 가고, 놀아주고, 밥을 먹이고...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일과 중, 엄마가 기다리는 휴식시간은 아이의 낮잠시간이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이가 고요하고 평안하게 잠이 들어있는 모습, 영락없이 천사다.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를 알려주는 천사.
나에게 '아기 천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20대 때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난 로소 피오렌티노의 '음악 천사(Musical Cherub)'가 그것이다. 지금도 같은 위치에 걸려있을까 싶지만, 당시 '음악 천사'는 애써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귀여운 아기 천사의 모습은 나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었다. 붉은 금발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통통하면서 살짝 발그레해진 볼, 그리고 류트를 연주하는 작고 통통한 손가락, 자신의 연주에 취한 듯 살포시 류트에 기댄 머리까지...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기 천사의 류트 연주가 들려올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로소 피오렌티노(1494-1540)'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겐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의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에 비하면 '누구...?' 할 만큼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계기로 찾아보니,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큰 화가라 한다. 놀라운 것은 그의 비극적인 생애다. 대인기피증과 '밤마다 묘지를 파헤친다'는 소문이 돌만큼 정신병자로 오인받았던 작가라는 점, 그리고 친한 친구를 절도죄로 고발했다 무죄로 밝혀지자 무고한 친구를 고소했다는 죄책감에 자살을 선택한 비극의 화가라는 점을 보면, 과연 이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가 이런 비정상적인 내력을 가진 로소 피오렌티노의 그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 사람들에 섞여들 수 없었고, 결국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내면의 나약함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천사를 창조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스러움은 본능적으로 '보호 욕구'를 자극하니까..
그래서 천사처럼 잠든 수연이를 보며 로소 피오렌티노의 '음악 천사'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세상의 짓궂음, 시끄러움 속에 물들지 않도록, 상처 받지 않도록 오롯이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아기 천사, 그래서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음악천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