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의 유서
내일 나는 죽는다.
죽음을 앞두고 책상 앞에 앉아 흰 종이를 펼쳤다. 나의 죽음이 억울해서 누구에게 하소연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누지 못하는 슬픔을 토해내기 위함도 아니다.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언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두니 오히려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무어라 써야 할까. 참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갈수 있어 감사하다고 써야겠다. 가족들 덕분에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좋은 기억, 추억이 있어 아쉽지 않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써야겠다. 죽은 이에겐 죽음과 동시에 사라질 슬픔이지만, 남겨진 이들에겐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을 슬픔이 되어서 미안해요.
그리고 아이들..
어떤 말들이 이 아이들의 삶에서 엄마의 부재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엄마의 삶 속에 빛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누구보다 사랑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음을 기억해달라고 써야겠다. 갈대 숲 강가에 모세를 내려놓는 엄마의 마음처럼 하나님 손에 이 아이들을 맡깁니다. 당신의 손에 이 아이들을 맡깁니다..
삶에 미련이 없다 생각했는데, 너희들을 생각하니 좀 더 살고 싶구나. 너희의 양 옆에 너희를 위로해 줄 배우자들이 있을 때 까지만이라도.. 조금이라도 나의 빈자리가 작게 느껴질 때 떠나고 싶구나. 너희에게 좋은 것만 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다. 내 삶을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나의 사랑들.
그리고 당신.
항상 마음 깊은 불안으로 흔들리는 나를 온전한 사랑으로 안아준 당신, 참 고맙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가장 행복한 아내, 엄마가 될 수 있었어요. 당신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나는 것이 미안하고 슬프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스럽습니다. 늘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는 좋은 아빠니까요.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감사히 떠납니다..라고 쓰면 될까.
잠에서 깨어났다.
가슴을 누르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꿈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미처 쏟아내지 못했던 눈물이 줄줄 흐른다.
선물이구나..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삶에서 받은 '오늘'이라는 선물..
곤히 잠든 아이들의 손,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기도한다. 건강하길,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지내길..내게 주신 또 하루를 감사히 맘껏 사랑하며 살길 기도한다.
새벽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