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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Jun 05. 2019

스스로 자라는 아이

엄마는 오늘도 걱정 중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늘 이 시간이 되면 휴대폰을 흘끗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오늘 아이가 밥 세 숟가락밖에 안 먹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매일 아침 유치원 현관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와중에도 태연하게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인사하며 들어가던 첫 아이의 첫 난관이다.  아직도 아빠가, 엄마가 옆에서 먹여주던 버릇 때문에 아이는 아직 혼자서 밥을 안 먹는, 아니 못 먹는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후, 내일 아침부터는 단호하게 혼자 먹게 하리라, 안 먹으면 절대 먹여주지 말고 치우리라고 다짐 다짐하며 맞은 다음날 아침.


"이젠 아기 아니고, 어린이니까 스스로 먹어야 하는 거야, 알겠지?"


긴 실랑이를 예상하며, 일부러 단호한 목소리로 엄포부터 놓았는데, 아이가 어느새 혼자 숟가락을 들고 닭죽을 떠먹고 있다. 어.. 이건 예상한 바가 아닌데..


"왜 이젠 아가가 아니야?"


엄마의 당황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천진난만하게 물어본다. 그렇게 깨끗하게 금세 한 그릇을 비워냈다. 또 엄마 혼자 폭풍 걱정한 건가 싶은 마음에 허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되돌아보니 엄마가 되고부터는 부쩍 걱정이 많아진 듯했다. '아이가 다치면 어쩌지', '아프면 안 되는데' 에서부터 '나쁜 버릇이 들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가 너무 힘들어할까' 등등.....

아니다. 사실은 젊었을 때부터 걱정이 많았었다. 일이 닥치기도 전에 지레 걱정부터 하는 내게 지금 신랑이 된 당시의 남자 친구가 이런 기도문을 알려준 적이 있다.


God, grant me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 whicn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신이시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평온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바꿔야만 하는 것들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가 쓴 평안의 기도(Prayer of Serenity)로 알려진 짧은 기도문이다. 바꿀 수 없는 일과 바꿔야 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바꿀 수도 없으면서 문제 해결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걱정을 하느라 감정을, 시간을 소모할 뿐이라는 지혜가 담긴 기도문이다.

소심한 엄마에겐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진출처 unsplash)

혹시 아이의 삶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지나친 자신감과 그로 인한 무거운 책임감이 소모적인 걱정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아이는 스스로 뿌리를 뻗어나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너무 호들갑 떨며 걱정하고 있는 거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아이는 스스로 자라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도 계속 일어나며 걸음마를 시작했고, 혼자서 잠들기 위해 애착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었다. 엄마가 일찍 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불안한 마음을 꾹 참으며 어린이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 만나는 신기한 것들을 일일이 겪어보고, 만져보며 세상을 알아나가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아이를 믿고 바라봐주는 엄마였다.


소심한 엄마는 오늘도 걱정 중이다. 밥은 잘 먹었을까? 친구랑 싸우진 않았을까?

걱정, 조바심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 대신, 아이 속에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엄마는 오늘도 연습 중이다.  (20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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