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어느 날 문득, 나의 오랜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친한 친구들보다 먼저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 어림잡아 20년 전의 풋풋했던 내가 친구에게 쓴 엽서였다.
"그러니 힘내고....
14p 그림처럼, 우리 꼭! 그렇게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되자"
기억 저편 묻어있던 시간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 보니, 대학 생활 동안 거의 매일 얼굴을 보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너무도 그리웠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 별 것 아닌 일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우리의 화두가 되었던 그 시간들 대신 피곤하기만 한 출퇴근 시간과 삭막한 인간 관계의 시간들이 나의 하루를 채웠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도 응원이 필요했지만, 갑자기 사회로 떨어져 버린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던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아련하고 몽글몽글한 마음이 떠올라, 친구에게 선물한 책을 찾아, 14쪽을 펼쳤다.
존 슬론의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그림이었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살랑이는 일요일, 세 여자는 도심 속 옥상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다. 일하는 동안 입어 더러워졌을 하얀 셔츠, 블라우스들은 깨끗이 빨고 탈탈 털어 햇볓 아래 널어두었다. 지극히 사적인 모습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마냥 여유롭고 즐거워 보인다. 머리를 말릴 필요가 없을 짧은 머리의 여자는 굴뚝 벽돌에 기대고, 한쪽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둔 채 미소 짓고 있다. 화가 존 슬론이 당시의 뉴욕 임대주택의 옥상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어쩌면 그녀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들이 한 주간 겪어냈던 열악하고 힘든 공장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쉽게 놓쳐버린 그 남자 이야기, 옆 집까지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다툰 옆집 부부의 싸움 이야기, 빡빡한 살림 속 말썽을 일으킨 아이 이야기 등등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엉클어지고, 젖은 머리, 대충 벗어버린 신발만큼이나 날 것 그대로의 일상 이야기들을 말이다.
내일 아침이면, 그녀들은 뽀송해진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묶고는 또다시 고단한 월요일을 시작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 틔워둔 숨통을 붙들고 숨 막히는 한 주도 그럭저럭 버텨낼 것이다. 그녀들이 지금 털어내고 있는 건 머리카락의 물기뿐만 아니라, 한 주 동안 쌓였던 삶의 무게리라.
하지만 날씨 좋은 일요일,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빨래를 널어놓고, 함께 젖은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 상쾌하고 즐거워 보인다.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듯 고민도 울적함도 털어내 버린다. 눅눅한 슬픔은 웃음소리를 따라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정말 보송보송하고 개운하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이 그림을 마주하던 때는 주 6일(당시에는 주 6일이었다. 세상에나..) 기계처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일요일이면 그 무엇도 하기 싫어 꼼짝없이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사회초년생의 시간었다. 함께 일상을 나누었던 관계가 너무도 그리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말도 타박하지 않고 들어주고 웃어주는 그런 시간들이 간절히 필요했다.
'우리도 그렇게 일상을 나누자'라고 편지를 보냈던 나도, 친구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삶에 차려놓은 인연과 일들로 시간 맞춰 얼굴 보는 것도 꽤 어려워졌다. 어쩌다 한 번의 메시지도 '별일 없니', '응, 별일 없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 아침 사춘기 딸아이의 투정에 받아치지 않으려 꾹꾹 참느라 힘들었다고,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집 앞 하천에는 벚꽃이 곧 만발할 것 같다고, 어제는 잔뜩 자란 꽃기린을 모두 잘라내어 작고 귀여운 아기 화분 여섯 개나 만들었다고, 요즘 새로 먹어본 화이트 발사믹이 꽤 괜찮다는 그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각자의 삶에서 바쁘게 걸어가다 보니, 우리의 길도 어느새 꽤 멀어져있었다. 촘촘하게 나누지 못한 일상이 길어지면서, 지금의 나의 사소한 일상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지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도 마음다해 조심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별일 없니.
그녀는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꾹꾹 눌러쓴 이십 년 전의 편지가 지금의 나를 찾아온 것처럼, 문득문득 우리의 이야기는 기억 저편의 내가 모르던 사건과 느낌들을 꺼내준다. 우리가 일상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애틋한 조각들을 조금씩 나눠주고 있었나보다. 오래 전 함께 꾹꾹 눌러 담아놓은 일상들 덕분에 여전히 우리의 인연은 너무도 소중하다.
그런가 하면, 시간을 걸어오면서 지금의 일상을 나누고 있는 새로운 인연들도 생겨났다. 이들로 인해 그저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순간순간 멈추게 하고, 들여다본다. 어쩌면 지금 나는 이들에게 나의 소중한 조각들을 나눠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먼 훗날, 우리는 서로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맞춰가며 이 시간을 풍성하게 추억할 것이다. 지금, 함께 누리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한 이유이다.
저녁 식탁이 음식과 모닥불이 있는 풍경으로 바뀌면 훌륭한 삶의 기반이 관계와 목적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진정한 부자는 통장에 찍힌 액수가 아니라 유대 관계가 얼마나 든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며,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행복은 지금보다 큰 차를 사는 데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라는 좀 더 큰 그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 우리가 그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 마이크 비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