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by 김수혁

무더웠던 여름도 금방 지나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을 맞다보니,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푹푹찌던 햇님의 얼굴은 차가운 빗물을 흘리는 구름에 가려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펄럭이던 옷자락은 이제 우산 아래에 얌전히 뉘여져 있다. 눈치 빠른 잎사귀들은 벌써 초록빛을 털어놓고, 누구의 손과 목에 착 달라붙던 선풍기는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부서지는 해안가의 파도를 고프게 하던 더위들은, 어느새 저 뒤로 흘러가 버린 듯 하다. 한참을 후덥지근하게 보냈던, 막막하던 여름도 이젠 가버렸다.


계절은 바뀐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몇 번의 순환을 지나온 아이들은, 곧 자라서 그 자명함을 당연하다 여기게 된다. 그렇게 태어나 지켜본 시간들과 함께, 계절은 언제나 당연히 바뀌는게 되어버린다. 아이의 시선은 떠오르지 않는 기억 속에 저 아래로 가라앉고, “그건 당연한거지”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된다랄까. 하지만 그 끝의 자명함은 당연하고 따질 필요가 없는 논리가 아니라, 여태 지켜봐온 것들의 내보여줌이 아니던가. 그러니 언젠가 끝이 다가온다는 것, 이건 끄트머리에 도달한 후에만 알 수 있는게 아닐까.


어느 이야기와 끝이 떠오른다. 여태 도무지 깨닳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던.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계속해서 품어오던. 그러니까, 휘몰아치는 젊음 속에서 가야할 곳을 가리키는, 황량한 무목적의 삶 위에서 계속 뒤따라가던, 한참을 홀려 쫓아가던 푸르른 도깨비불 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 환영에 또 다르게 일렁이는 빛들이 덧데어지던, 어느 칠흑 속에서 헤메이던 별들의 동심원이 되어주던, 끊임없이 추락하는 공허 속 유일히 닿을 수 있던 신기루 같은, 그런 이야기와 종잡을 수 없었던 마무리가.


이제는 안다. 왜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갔던 건지. 그 속의 나레이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어떻게 그 결말이 가능한 건지.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그들은 끝나기 전까지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부답일 그들은 한발짝 떨어져서,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는다. 어떤 해갈을 구걸하는 이에게, 그들은 그저 스스로 깨우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니 이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갈망하며 놓지 않았던 어느 여정과, 지나고 나서야 풀려져버린 어느 풀리지 않던 끝, 그 둘에 관하여.




나는 왜 이 모양인걸까. 지금으로부터 십년이 좀 안되었던 땐가. 젊다면 젊다고 할 때 쯤 시작된 질문이다. 스스로의 어떤 유약함이 반복되어 물음표를 던졌다랄까. 왜 나는 누구나 쉽게 던지는 말이 머리 속에 멤도는 건지,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여정이 이따구인건지,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길래 그런건지. 왜 나는 이리 깊게 빠져있기만 한건지.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그 주위를 떠돌기만 했다. 알 수 없는 것들을 밝혀내는 것, 그건 어느 누구에게도 배울 수도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기에. 그나마 알만한 건, 머릿 속을 차지하던 몇몇 기억 뿐.


그 실마리들은 너무 강렬했다. 어릴 적 쓰러져 죽어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 그를 둘러싼 다 큰 사람들의 괴로움들, 그리고 그들을 다 받아내야 했었던 어느 장면들.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내게는 반드시 포기해야만 했고, 어떻게든 알아서 지나왔어야 하던 그런 날들. 잠시라도 말할 수 없었던 그런 기억의 주변부, 그리고 반드시 썩어 비틀게 방치해야 했던 어느 무능력한 날들. 떠올리기만 해도 강하게 반발하던 그들에 대해, 나는 내 나약함의 원인으로써 그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당신들 때문이야. 이런 생각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왜 이딴식이 되었는지 설명해줄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은 기억이고, 나는 단지 과거에 붙잡혀 있다는 것 뿐. 아무래도 그때의 내가 바라던 건 완전한 설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모르는 것들을 알때까지, 눈앞을 완전히 가려버린 어둠을 마주보며, 그들을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듯 싶다. 단지 나는 몰랐을 뿐이다. 어느 인과 뿐만이 아니라, 그 시작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징조인 것을.


그로테스크 하다고 되뇌였다. 어느 여정의 초입에서. 어떤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을 돌아보면서, 그 시절이 주는 무게에 스스로 짓눌리면서, 그러면서도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이면서. 누구나 처음은 미숙하듯, 나는 어떤 기억에 대항하는 방법을 알 수 없었고 몰랐다. 그저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해야하는 것을 하기만 했을 뿐.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어떤 잔인함, 세상은 아름답고 삶은 살아갈만하다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네들만이 품을 수 있는 희망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계속했다.


-


그쯤이던가. 암전 속 파란 섬광의 궤적이 나타나, 희미하게나마 갈 곳이 보이던게. 어느 지혜의 여신의* 이름을 본따진 픽트족 여전사의 이야기, 스스로가 죽은 자들의 종착지로 향하던 여정이 들려오던게. 헬하임(Helheimr)이라 불리는 안개와 연무의 땅, 유일히 자신을 돌봐주던 연인이 붙잡혀 있는 곳, 끝나기 전까지는 되돌릴 수 없는 시작이 보여지던게. 그 죽은 자들의 비명과 절규 뿐인 곳에서, 연인의 머리통을 허리에 찬 채, 죽음의 여신에게서 그를 되찾아오기 위한 그 결연한 뒷모습이 상연되던게.


어떤 여전사의 비명과 절규. 누군가는 고통이라고 부를 것들로 가득찬 여정, 그 장면들은 무모하다 부를 법 했다. 어느 지옥의 원형으로 스스로 향하는, 죽은 자들의 환영이 실재가 되어 나타나는, 잊을 수 없어 시달리던 기억들이 파편화되어 보여지던, 깊게 각인된 죽음의 기억들을 파고드는 그런 장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옥의 심층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했다. 그 목적은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함이였지만, 그녀는 끊임 없이 신화 속 등장인물의 형상들에 부딫치면서, 대면 할수록 자신을 되집어 삼키는 어둠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그 넘어설 수 없어 보이는 것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칼을 빼들어 달려들었고, 그 속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이글거리는 지푸라기 머리의 거인, 수르트(Surtr)의 거대한 화마에 불태워지면서. 여러 까마귀들의 가짜 형상을 취한, 발라븐(Valravn)의 환시 속에서 헤메이며. 가려진 그림자에 속에서 핏빛 환청을 실연하는, 헬하임의 번견 가름(Garmr)의 어둠에 무너지면서. 흩날리는 파편 속 죽음의 전당에 웅크린, 여신 헬라(hela)와** 망자들 속 끝 없는 전투에 무릎 꿇으면서.


완벽한 고통의 형상, 그 어떤 구원도 침습할 수 없는. 그런 세누아(Senua)의 여정은, 어떤 이정표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멤도는 이를 이끌어주는, 파란 빛의 희미한 연인의 형체처럼 보여졌다. 특히 반복되던 말들, 스스로의 공포와 두려움을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는, 그 어떤 어둠이라도 눈을 뜬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그 괴로움으로 둘러싸인 용기의 상징들은, 어떤 기억의 정대면과 그 당위로 그러졌다. 그러니 그 무모함을 따라 계속 가기만 했다. 피어나는 원망과 후회를 뒤에 둔채, 안개와 연무에 가려진 희미한 기억들을 향해.




어느 하나의 이야기, 그는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 듯 싶다. 오히려 그 배경에는 여러 갈래의 뿌리가 엃혀져 있고, 그들이 모여 지상 위에 싹을 틔운 것은 아닐까. 그 완성된 하나의 매듭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던 수 많은 줄들이 한 점으로 꼬이며 만들어낸 결과는 아닐까. 그러니까, 피어난 하나의 싹 혹은 완성된 하나의 매듭, 그게 또 다시 자라고 뻗어나가며 서로가 접목(椄木)되고 묶여지며, 또 다른 이야기들이 피어나고 또 다른 매듭짓기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닐까.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항하기. 짓뭉개는 과거의 일들을 마주하기. 계속해서 들리던, 회피와 기만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냐는 말은 그리 쓸모 있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지만, 그조차 몰랐던 나는 상상 속 장면들에 머물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서 였던가. 현실과 상상 둘 모두에서 떠돌던 가운데, 누군가의 머릿 속 장면들이 실체화된 이야기, 또 내 상상과도 맞닿았던 이야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누군가 만들어낸 환상에 내 머릿속 장면들이 유착되며, 허구는 다른 모양의 현실을 만들어냈다랄까.


또 다른 실마리의 가능성. 지리멸렬하던 여정 가운데 공명하던 어떤 섬광들. 나갈 수 없었던 기억 속에서, 그 후로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으면서. 저기 저 멀리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어떤 손짓처럼 보이던 명멸하는 빛을 하나하나 쫓아가면서. 그 실낱 같은 잔광들, 그들은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어쩔 때는 짧은 소리와 구어의 형식을 빌어서, 어떤 건 길게 눌러쓰인 한탄의 문장들로 묶이면서, 또는 연속되는 그림과 풍선 속 글자가 병치되면서. 모두 다른 형식들이지만, 그들은 또 다시 어느 방향을 제시했다.


거대한 죽음과 그 사건을 풀어내며 맞서기. 음울한 배경 속에서 보아왔던 그 빛살들, 그 속에 각자 다르게 묘사된 잔인함들처럼, 보아온 형식을 빌려 과거의 현실을 표현하기. 누군가의 보편인 눌러담는 무시를 뒤에 두고, 보아온 여전사의 끝나지 않을 고통을 다시 반복하는, 그 그로테스크함을 이야기로써 다시 만들어내기. 어느 구원과 기적을 바라지 않아야 하는 칠흑 속에서, 절멸된 세계 속의 형식들을 따라가면서, 마주했던 기억 속 진실을 남김없이 비워내기. 그때의 내가 스케치했던 건 이런게 아니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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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전사의 희생. 그 연인과 또 다른 죽음들을 놓지 못해, 망자들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 이 이야기는 수많은 현실의 형식들처럼, 선명한 형상들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환상과 환청들의 세계로, 왜곡되고 비틀린 인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불안정하며 무너지고 다시 결합되는, 투명하지만 다시 불투명해지는 어떤 비논리의 세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분열된 정신의 세계, 그 특유의 혼란을 보여주며 혼돈을 야기하는. 그로써 모든 판단을 흐리게 하며, 그 중심의 기억들만이 겹쳐지며 선명한 형상을 이루는, 그런 이야기랄까.


끔찍한 환상으로 다시 보여지는 기억들. 그 사이엔 모조리 죽음 뿐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광증을 정화하려 화형의 장면을 보여주던, 옛 사제인 아버지의 목소리. 그런 고향을 떠나 잠시 광야를 떠돌던, 그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고인 강물을 마시다 죽어버린 사람들. 예고한 그 선지자를 원망하는 절규와 함성. 또 다시 찾아간 고향에서 맞이해준 참상. 거목에 매달린 고향 사람들의 시체, 그리고 갈비뼈와 피부를 드러내 매달려 그녀 앞에 매달린, 갈고리에 매달린 두팔로 그녀를 환영하던 유일한 연인의 죽음. ***


하지만 그녀는 다시 맞선다. 분열된 세계에서 흩어져 버리는 기억들, 그들을 다른 이야기 위에 세워 붙잡으며. 광야에서 만난 어느 떠돌이 노예가 들려주던, 고향을 몰살시킨 북부 바이킹들의 신화에 덧데면서. 그녀는 노예로부터 살갗이 불태워지는 죽음의 고통을 견디는, 타오르는 수르트에 대항하는 방법을 배우고. 흩어지는 환영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내며, 모습을 숨기는 발라븐에 대적하는 방법을 찾아가며. 그러면서, 깨부셔진 기억들을 한 곳으로 모으면서, 어떤 진실과 깨닳음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 신화적 발판을 하나씩 밟아간다.


기억에 진실을 부딫치기. 유일하게 그녀를 알아주고 보듬어주던, 그 연인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그녀의 세계에 울려 퍼지는 어떤 어둠의 목소리, 그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통해 바로 서기. 사제인 아버지의 예언 속 미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 어둠과 저주를 단조된 진실의 응집으로 부정하기. 그녀는 부서졌던 기억 속 연인이 전해준 훈련 속 깨닳음을 무기 삼아, 죽음으로 덧칠된 핏빛 어둠을 밀어내고 번견 가름을 베어낸다. 그리고 다시, 놓을 수 없던 그를 여신에게서 되찾기 위해, 그 연인을 죽음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끝나지 않을 여정의 마지막을 향한다.




끝 없는 죽음의 진창. 품어오던 어느 여전사의 이야기, 그 마지막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고통의 긍정과 맞대면에 시작된 여정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끝은 있을 수 있는가, 끝나는 이야기와 끝 없는 삶은 비교가 가능한가 하고. 그러니 하던 걸 계속했다. 진실의 그물을 더 선명히 만드는 것. 죽음 주변부의 기억들을 남김 없이 복원시키려 하는 시도. 물론 그 현장으로 기억을 되돌려놓는 건, 온몸이 불타오를 진창 속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나약함에서 시작된 이 여정, 텍스트의 기술로 재구성된 장면들, 그들 모두 무모했다랄까.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이제는 자연스레 말을 꺼내는 가족들과, 어떤 부과도 없이 주어진 것을 만끽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고립되었다는 자각. 하지만 아무에게도 어떻게 해야할지, 그 깊게 틀어박히는 방법 말고는 무엇이 있는지, 이 늪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무엇도 꺼내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도, 대답해줄 수도 없는 것. 스스로만이 마주해야 하며, 끝 없이 펼쳐지던 어느 죽음의 늪, 그 한가운데서 헤매기만 했다. 여정의 초입에서 방법을 몰라 떠돌던 것 처럼.


-


죽은 자들의 전당에 도착해 몸을 던지는 그녀. 저 앞 죽음의 여신에게 당도하기 위해, 베어왔던 망자들을 다시 베어내며. 사제의 말로 들리는 어떤 후회들, 스스로가 고립되고 비참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 그리고 고함치며 다시 죽은 연인의 진실을 휘두르는 여전사. 그러면서 환영으로써 나타난, 쓰러트린 신들을 또 다시 베어간다. 또 다시 어둠의 목소리로, 죽은 것은 죽은 거라며 이제는 보내주라는 말. 또 다시 아니라며 목이 쉬어져라 소리치고, 끊임 없이 나타나는 망자와 베어내기. 그리고 또, 찌르고, 살아나고, 밀치면서, 쓰러지면서, 부정하면서, 거부하며, 그렇게.


반쯤 이글거리는 여신 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그녀. 검을 꼬나쥔 죽음의 여신은, 쓰러진 여전사 앞에 말 없이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녀는 놓친 연인의 해골을 부여잡고, 죽음 앞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라 간절히 따지기도 하며, 내놓으라고 큰 목소리로 소리치기도 하며, 자신의 영혼을 바칠테니 제발 그를 살려달라 간청하며, 잠시 흐느끼다 이제는 끝내달라고 말한다. 여신은 무모한 자의 목을 잡아 배를 검을 찔러넣고, 내팽개쳐진 세누아는 바닥에 쓰러진다. 전당에서의 마지막 숨이 울려 퍼지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결말. 많은 사람들은 어떤 몰락으로 끝나는 후반부에 대해, 그도 자신이 애착을 붙인 이야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는 듯 싶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한참을 이입하며 내 이야기라고 착각 했는데,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른 마무리라니. 거기에 닫힌 결말이라면 더더욱 그렇겠다. 다른 가능성으로도 뻗어나갈 수 없는, 그저 그렇게 끝난 이야기일 테니. 사실 내겐 이 이야기가 그랬었다. 과정에 있어서 이를 발판 삼아, 어떤 죽음의 기억을 그리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 참담한 과정 속에서 바라본 결말은, 오히려 납득할 수 없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으니.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망자들의 세계, 헬하임에서의 세누아의 죽음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비튼다. 쓰러진 그녀와 비추어진 바닥의 거울 상, 맺힌 상으로써의 연인은 죽음을 친구로써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나서, 죽음의 여신은 바닥에 놓인 그 연인의 해골을 들면서, 마치 그 여전사처럼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 놓지 못했던 죽음을 절벽 아래로 놓아준다. 그리고 다시, 그 여신이 있던 자리엔 세누아가 있고, 그녀는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뒤돌며 곧 이야기는 끝난다.


Hellblade: Senua's Sacrifice 의 결말은 완벽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해석에서는,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의 여정, 죽음과 어느 기억들을 놓을 수 없었던, 어느 여전사의 기억 속 나레이션이였다는, 결국에는 죽음을 놓아주게 된다는, 어떤 해방의 결말이라 회자된다. 나는 이 해석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몇년 동안은 납득할 수 없었던 결말이기도 했다. 어떤 죽음과 그를 둘러싼 기억들에 맞서는 것, 그 과정에서의 해방은 불가능한 것 처럼 보였다. 시작을 결심한 이정표가 가리킨 끝엔, 보이지 않고 닿을 수도 없어 보이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진창이라 표현했던 것, 이제 그건 사라졌다. 불가능해보였던 어떤 기쁨의 순간들, 그들을 지켜봐도 이제는 침잠하지 않는다. 올라가도 다시 곤두박질 치지 않고, 그저 매끄럽게 파도를 탈 뿐이다. 어떤 열등감과 발목을 잡아 끄는 무엇, 그것은 이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가장 큰 것의 부재는 확실하다. 그리고 그 납득 불가였던 결말부, 그를 향해 부정하던 생각들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꽉 잡은 손이 자연스레 풀려버렸다고 해야하나.


이제 쓸게 없네. 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정리했던 기억들을 모조리 써버렸고, 그걸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러면서도, 더 이상 침잠하지 않고 여러 날들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죽음에 대한 기억을 쫓는다는, 그러면서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는 어떤 정체성. 그건 잃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되었고, 이젠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랄까. 그럼으로써, 그 결말부와 동일한 끝에 다다름으로써, 왜 그런 끝이 났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랄까.


끝을 말하는 글의 끝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내가 참 고생했다 해야하나, 아니면 비교적 자유로운 미래가 있다 해야하나. 이야기의 효용성을 말해야하나. 흠. 전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여태 했던 걸 생각해보면, 대구를 맞추는게 자연스러웠지. 그렇다면, 그 품어왔던 이야기의 끝, 그 납득할 수 없었던 결말 속, 주인공이 중얼거리던 나레이션을, 그 자유로움을 말한 텍스트를 넣는게 좋겠다. 품어왔던 이야기에 대한 예우로써도, 내 여정의 마침표로도 적절할테니. 어떤 안녕을 기념하는 끝마무리로써도.




never forget what it is like to see the world as a child, senua: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던 세상을 잊지 말거라.

where every autumn leaf is a work of art

각각의 낙엽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으며,

every rolling cloud, a moving picture

저마다 흘러가는 구름들은 움직이는 그림과 같고,

every day, a new story

매일 매일이 새로운 이야기란다.

we too emerge from this magic, like a wave from the ocean, only to return back to the sea.

바다의 파도처럼 우리 또한 이런 마법으로부터 나서 결국에는 바다로 돌아가는 거야.

do not mourn the waves, the leaves and the clouds

부서지는 파도, 떨어지는 잎새,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고 안타까워하지 말거라.

because even in darkness, the wonder and beauty of the world never leaves,

끝 없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의 경이와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단다.

it's always there, just waiting to be seen again.

그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우리가 다시 바라봐 주길 기다리며 말이다.










* 켈틱 신화의 여신 senuna, 자세한 건 https://en.m.wikipedia.org/wiki/Senuna 를 참조. 로마-브리튼 지역 여신, 미네르바와 동일시

** old norse 의 기준으로 헬하임의 여신은 hel 로 표기해야 하나, 그대로 한국어 발음을 병치하기에 기존의 영문명 hell 과 헷갈리므로, 여신의 영문명 hela 의 한국어 음차로 표기.

*** 피의 독수리, 바이킹들의 최고 형벌 중 하나. 역사적 실존 논쟁이 있으나, 게임에선 상징 장치로 사용.

참조


- Youtube, GCL, 정신병을 앓던 여전사는 왜 스스로 지옥으로 향했는가?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1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2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3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4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5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6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7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8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9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10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11

- Youtube, 방앗간 비둘기, hellblade: senua's sacrifice, 파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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