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 있던 누나는 말했다. 이제 구멍은 막힌 것 같다고.
천장을 따라 미세하게 울리는 에어컨의 진동, 때때로 정수기 속 얼음이 구르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작은 인기척이 소음의 전부인, 그런 가정집의 침묵은 여느 한마디에 사라졌다. 식탁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화자에게로 시선을 향했고, 마주 본 시선 끝에 있던 이는 말을 이었다. 세 가족 속에서 있던 일들을 꺼내면서.
새로운 구성원과 시댁, 거기서 적응하기엔 쉽진 않아 보였다. 고요한 가정집엔 없는 매형,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된 며느리 사이의 관계가. 계속 들어온 바론, 나름 보이지 않는 마찰과 충돌도 있었던 것 같고. 없는게 이상할테지. 태초의 가족 밖의 외연, 보고 듣고 자라온 우주 너머로 발을 내딛는 셈이니. 더불어 집콕과 누워있기가 취미였던 며느리는, 이전부터 잦아져 버린 시댁과의 모임을 썩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하기 어려운 쉬는 시간 외에도, 일과의 병행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 그건 누나에게 낯선 가족을 맞이하는 일인 듯싶었다. 서로에게 덤덤한 아빠와 나 사이 너머로, 긴밀하게 주고받는 일을 해야만 하는 곳 너머로, 문을 박차고 나가야만 하는 그런 일. 그러니 보지 못했던 광경들, 그 또 다른 생활 세계의 장면들에, 닫아놓았던 날들이 열리는 듯싶었다. 방문을 열고 나간다는 건, 요동치는 혼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 그리고 누나는 문 밖에서 보아온, 완연한 부재와 함께 닿을 수 없었던 것을, 막 입을 떼며 눈앞의 동생에게 말하려 했다.
“시누이가 참 부럽더라고.” 누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시누이의 임신과 출산 이후에, 시댁 식구들은 더 많이 모이게 되었었고, 그 속에서 며느리는 뭔가 본 듯했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부담 없이 부탁하는 게 부러웠어.” 그리고 이렇게 되뇌었었던 것 같다. 이어서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어려움을 말하며, 비어 있는 걸 말했다. “우린 그럴 상황이 안 되잖아.” 그렇긴 했다. 엄마는 죽은 지 한참이 지났고, 아빠는 환자니까. 원래의 가족에서 기댈 곳이라곤, 이렇게 잠깐이라도 등을 맞대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뿐이니까.
“우린 전우인 거지.” 같은 곳이 비어 있는 남매인가. 그렇긴 했지. 태초의 두 항성 사이의 동심원, 그리고 부서진 하나와 잔해로 뒤덮인 하나. 그 사이를 공전하며 충돌하는 파편을 헤쳐나가야 하는. “그래서 시험도 오래 쳤던 것 같아. 변하지 않는 장벽이 필요해서.” 처음 들었던 사실. 선생님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하고 말았던 듯싶다. 각자 서로의 궤적만을 돌기에 힘겨워 그랬던 걸까. 잘 모르겠다. 이제는 시험을 통과해 자격도 생겼고, 덕분에 출산 후에도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있으니. 스스로가 손을 잡고 동심원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결혼 후에도 이 정돈 아니었어.” 그리고 이제는 좀 달라진 것 같다는 말. 아기는 짧은 잠에 빠져 있었고, 남매는 그 비좁은 틈새 사이에 앉아 있었다. 피곤한 표정이 담긴 얼굴. 하지만 그 속내는 어땠을까. 잃어버린 엄마와 딸이라는 구세계를 상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새로이 만들어진 엄마와 아들이라는, 어떤 삶을 밝게 비춰야만 하는 항성계를 떠올리고 있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끊임없이 빨아들이며 새어나가던 가슴 속의 무엇이, 빛을 발하는 별이 된 수수께끼를 느끼고 있던 걸까.
단호히 축하한다 말했다. 옆을 떠날 수 있다는 유일한 전우의 되뇌임, 목적을 찾아버린 어느 엄마의 깨달음, 한참을 자라버린 어느 딸의 중얼거림, 그 앞에서 꺼내야 할 말을 고르면서. 고요한 생활 세계 속에서, 어느 별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어느 표정 속에 아마도 맺혀있었을, 또 다른 시작의 섬광을 그려가 보면서. 저 멀리 떠나버린 것에 대해, 닿지 못할 말을 떠올려 보면서.
시인은 말했었다. 귀신이 들려야만 써 내려갈 수 있다며. 의도를 뼈대 삼아 한땀 한땀 빚었다기보다, 있던 것들을 토해내듯 적어갔다 들리기도 했던, 그 조심스레 가라앉던 말. 한때는 추앙했으나 한때는 저주하기도 했다던, 한참을 멀리 두었으나 다시 다가서게 되어버린, 짊어진 채 끌고 가야만 했던 형식에 대한, 그 쓰여야만 했던 진실에 관한 말을.
거짓은 없었으리라 여겨졌다. 아니, 없었어야만 했다. 그는 말했었다. 문학이라 불리는 건 거짓으로 점철될 수 있고, 몸에서 뻗어 나온 손끝의 조그만 떨림 같은 것, 그야말로 완연한 진실이 될 수 있다며. 사실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읽고 보아온 그의 시, 혹은 순간 터져 나오던 어떤 노래, 아니면 궤적을 그리기 위한 그의 문장들, 이들의 진위 역시 그리 신경 쓰이진 않았다. 나는 그저 그의 세계를 떠돌면서, 보고 들어온 내 기억과 그의 프리즘 사이에서, 맺혀 있을 찰나의 진실을 좇고 있었을 뿐.
생활 세계에서 어그러지던 현실. 누구에게는 주어진 설명과, 내게는 박탈되던 어구들. 그곳에서 완벽히 머물던 사람들과, 깨어진 틈 사이로 새나가는 물음. 한 치의 의심 없을 상식과, 서지 못해 허우적거리던 비관. 통상의 맥락 속에서 말해지던 것, 내 현실 밖으로 빗겨나가던 것, 그건 언제나 아찔하기만 했다. 닿지도 못했으니 만질 수도 없었던 것들. 그러니 잡을 수 있는 진실에 대한 갈망과, 그에 닿기 위한 발구름은 당연했을지도. 어떤 구절 속에서 헤매이던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 수도.
그대는 오지 않았네.
삐뚤어진 세계관을 나누어 가질 그대는 오지 않았네.
나는 빛을 피해서 한 없이 걸어가네. *
올해 초, 갑작스레 들려온 그의 수상 소식. 진심을 담아 축하할 수 있는 것. 작년 누군가의 세계적인 수상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 왜 그랬던 걸까? 어차피 그런 건 전부 겉치레이고, 진심이란 단어마저 전할 수 없는 건데. 당신을 향한 말이란 건, 전부 쓸모없는 걸 텐데. 어차피 알지도 닿지도 못한 채, 죽고 떠나보내는 게 당연한 건데 말이지. 그래서 그런가. 그가 쓴 시를 처음 볼 때도, 비슷한 감상이긴 했다. 지상의 울음을 내버려둔 채, 태워져 하늘로 올라가던 것의 목격담. 잊지 못할 부고 문자 하나와, 의미 없이 바라보던 무덤과, 노래가 되지 못한 당신이 그려지던.
얼마전, 연이어 그의 신간이 나왔다. 처음 본 겉모양에 조금 놀랐다. 보아온 그의 인상답지 않게, 파스텔 톤의 뭉글뭉글한 색을 썼다랄까. 죽음이 가득하게 쨍한 다섯 번째 시집과도 달랐고, 어둠 속에 내리던 빗방울이 스친 첫 번째 시집과도 달랐다. 그리고 그를 펼친 누군가는 말했다. 이제는 무뎌진 것 같다고. 확실히 그는, 그의 시는 무언가 바뀌었다.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책임을 진다
공터 밖으로 전해지면 너무나 평범해져버리는 고요 때문에 *
책임을 진다. 공공연히 알려지긴 했었다. 그의 신간에도 나오던, 별의 이름을 붙여준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 더불어 이미 직감하고 있기도 했다. 그가 함께 바뀌어가고 있단 걸. 하지만,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살지 않는 것” * 이라 말하던 그가, “내 시가 누군가의 입맛을 잃게 해서” * 미안하다던 그가, 그의 진실은 그저 고통받는 삶의 형식이라 말하던, 그런 이가 책임을 진다 쓰다니.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전처럼 고요를 바라보며, 잊힌 것들을 언급한다고 해도, 그는 이미 저 멀리 떠나버렸다는 건.
순전히 기뻐해야만 할 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일. 그는 신간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희미해진 별자리를 따라 날아올랐다/ 타버린 나비에게만 보였던 별이 있다” * 시인은 별을 향한 날갯짓을 펼친다. 그 펄럭이는 아래로 불티가 흩날린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그라들기 전에 손을 내밀어 보는 것. 단지 올려다 보기만 하는 것. 그런 것뿐인 걸까.
완전 밑 빠진 독이네.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부어도 부어도 늘어나지 않는 것. 누군가 채워줘도 금세 자리를 비워 버리는 것. 잡을 수 없어 놓고만 있었던 것.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맹렬히 휩쓸어 바꿔버리던 것. 당신이 바란 안녕들이 순전히 퇴색되도록, 비관과 자조로 덧칠시키던 것. 누군가의 때 묻지 않은 순수를, 당신의 무능 아니면 내 힐난으로 뒤바꾸던 것. 신성스레 놓지 말아야 할 누군가를 향한 희망을, 뒤집어 닿지 못할 절망으로 뒤범벅 시키던 것. 그러니까, 한순간 되뇌던 건, 어떤 뒤틀림과 선고가 돼버린게 아닐까 싶다. 당신이 내비치던 선의로 보이던 것, 그는 내게 비극으로 되돌아왔다는, 소리내어 입 밖으로 전할 수 없었던 말은.
사람은 변한다. 그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내게도 확실한 진실인 듯싶다. 어느덧 찾아온 평온함에, 문득 떠올랐다 해야 하나. 이제는 뒤집어 엎히지도 않고,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에 데면데면하니. 조금 기쁘고 아쉽긴 하지만, 전과 그 모양은 많이 다르긴 하다. 더불어 드나드는 것들을 지켜보며, 필요했던 진실들도 적어졌으니. 어떤 죽음과 이별의 당연함도, 이제는 딱히 쓸모 있지는 않아졌으니. 어떤 순수함과 무신경한 것들도, 가끔 그럴 수 있다 말하곤 하니. 그와 같이 시야도 넓어지지 않았나 싶다. 한 곳만 바라보며 갈구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게 되었으니. 그 뚫려 있는 곳 앞에서, 찰나의 고요함에 앉아 골몰하며.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가깝다 여긴 사람들은 이미 저 너머에 있었다. 자신만의 현실과 목적지를 쫓아가며, 또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살아오며 뭉쳐있었던 어느 모양들을, 움직이기 위해 하나씩 벗어가면서. 한 사람은 그저 살아온 대로 달리다가, 한 사람은 무엇에 홀린 듯 시작되어서. 뒤에서 바라본 그들의 길은, 참으로 명확한 목적을 제시해 주는 듯싶었다. 어떻게든 내던져진 삶의 한가운데서, 누군가를 위해 또다시 자신을 내던지는 것. 몇십 년 동안의 지난하고 고될 여정을, 목적 없이 태어난 스스로가 긍정하는 것. 수도 없이 지리멸렬할 현실 가운데에서, 누군가를 위하겠다는 말을 고정될 진실로써 대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 평온함 속에서 보이던 것. 할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 때때로, 헌신은 좋은 것이라 당연스레 말해지곤 한다. 어찌 되었든, 선의는 선한 것이라 여겨지곤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어떤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에 괴로워했던 날들. 그들에게 그저 좋았던 말들과, 내게는 혼란스러웠던 말들. 의도와 결과는 언제나 같기만 할 수가 있나. 오히려 어떤 낭만은 순수한 착취와 전횡이 될 수 있는 건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나는, 기억과 진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나. 또 다른 반복이 일어나지 않게, 어떤 무능력을 막아야만 하지 않나. 하지만 어떻게, 망설임을 끝낸 걸까. 먼저 앞서나간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버린 걸까.
그 사람들 중 하나는 말했다. 이제 구멍은 막힌 것 같다고. 그건 무슨 말이었을까. 또 한 사람은 적었다. 책임을 진다고, 별을 향해 날아오른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내가 보아온 진실 속에 있긴 한 말일까. 알아들을 수 없기에 납득할 수도 없는 말. 올려다보는 것만으론 닿지 못할 그런 말. 그러나,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말. 쌓아온 진실로써 납득할 수 없는 말. 행위로써 상처 입힐 수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말. 그렇다 해서, 단순히 부정할 수도 없는 말. 떠오른 낭만에 끄덕이게 되는 말. 누군가를 위한다는 목적에 납득하고 싶은 말. 하지만, 보아왔던 현실이 가로막는 말. 그렇기에 아직까지 놓을 수도, 단정지을 수도 없는 말. 그 앞에서 나는 그저
들여다 본다
우두커니 앉아
납득할 수 없는 어떤 낭만과
아무런 목적 없는 진실을 안고서
바라만 본다
저 너머의 별빛과
흩날리는 날갯짓
망설이던 앉은뱅이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들리지 않을 웅얼거림
그뿐이다
* 인용은 허연의 시 일부. 순서대로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불온한 검은 피』, 원문은 줄바꿈 없음), 「작약과 공터」(『작약과 공터』), 「내가 나비라는 생각」(『불온한 검은 피』), 「Cold Case」(『내가 원하는 천사』), 「타버린 나비」(『작약과 공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