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정해놓으면 기다림의 쫀득함이 행복으로 변한다.
라면 먹는 날을 정해놓았다.
시합을 앞두고 체중 감량에 들어가면 운동도 운동이지만 먹거리 단속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군인들이 초코파이에 열광하는 것에 이유가 없듯이 감량하는 사람이 많은 음식 가운데 유독 라면이 당기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무튼 라면의 유혹은 견디기 힘들다.
추성훈 선수가 마흔일곱의 나이에 한 체급 낮은 아오키 신야와의 대결을 앞두고 혹독한 체중 감량을 할 때도 역시 라면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라면은 위대하다.
시합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대체로 식단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그간 감량하고 만든 몸 상태가 아까워 식단을 꾸준히 유지하게 되는데 이때도 라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대신 라면 먹는 날을 정해놓는다. 나는 그렇다.
라면 하나 먹는데 날까지 미리 받아놓으니 라면의 격이 확 올라간다. 별거 아닌 라면에 의미가 부여되고 유튜브에서 라면 잘 끓이는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어떤 노력을 들이더라고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고 싶은 간절함이 발휘된다.
가장 힘든 건 라면의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과 한국의 라면 수준이 너무 월드클래스라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면 잔잔한 흥분이 시작된다. 조리도 원래의 베이스를 유지할지 달걀, 만두, 파 같은 재료들을 첨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라면 먹기 전날은 이런 감정들이 최고조에 달하는데 세라토닌의 분비량이 폭발해 퇴근이 즐겁고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하게 된다.
행복은 작은 것에서 얻는 의외의 득템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아프지 않으면 그게 행복이고 배가 고프면 그 역시 행복이다. 무탈함에 감사해야 한다. 라면 먹는 날을 정해놓았다.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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