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 걷는 사람

ㅣ타인이 내 삶을 규정하려 할 때가 있다.

주변에서 요즘 무얼 쓰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냥 머쓱하다. 나도 내가 무얼 쓰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는 신선함에 더 머쓱하다.      

“에세이 준비하는데 영 어렵네.”      

정도로 대답하지만 내가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어도 괜찮은 걸까? 기존에 열심히 쓰는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한때 살을 빼기 위해서 출퇴근을 걸어서 한 적이 있다. 회사와 집은 거리가 꽤 멀었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오늘도 걸어왔냐며 대단하다고 했다. 실제로 10kg 넘게 감량하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칭찬과 질문이 쏟아졌다. 하물며 다른 부서 사람들까지 찾아와 신발이며 식단까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나는 걷기의 아이콘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약간의 요요가 찾아온 시기에도 로비나 승강기 등에서 만나면 으레 걷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걷는 사람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인상을 가장 강렬한 기억 한 장면으로 규정해버린다. 타인이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의 인식 속에 나는 쓰는 사람이며 걷는 사람이긴 하지만 단지 삶의 단면일 뿐이지 쓰기와 걷기로 나를 규정지을 수는 없다.     

간혹 타인의 기준에 동화되어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하는데 보이는 화려함보다 감춰진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자신의 화려함을 노출 시키는 사람은 인간이 정해놓은 순위에 흔들리는 사람이다. 굳건한 자신만의 기호가 없기 때문에 “좋아요”에 연연하며 끝없이 SNS에 존재를 드러내고 가치를 인정받으려 애쓴다. 하지만 타인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보이는 단면보다 훨씬 깊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뿐임을 상기하자 나는 쓰는 사람이고 걷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