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어디든 “순삭”을 붙여도 어색함이 없는 세상
회사에서 지급하는 휴대폰만 사용하다 보니 단말기의 가격이며 요금체계에 대해 1도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휴대폰이 냉장고만큼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 작은 물건에 들어있는 기술의 가치가 그 정도인가 놀랍기만 했다.
가치의 상승은 더 작고, 더 빠르고, 더 많은 기술이 집약되어야 한다. 단순히 캠핑장비만 놓고 보더라도 크고 무거운 것보다 작고 가벼우면서 강도나 기능에서 앞서는 제품은 가격이 훨씬 비싸다. 자동차나 전자기기, 컴퓨터 같은 경우는 반응 속도의 차이가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필연적으로 이런 눈부신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속도”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어령 박사는 「짧은 이야기 긴 생각」 중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사색을 하지 않고 검색을 합니다. 검색결과 없이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이 역시 속도에 매몰된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을 꼬집은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없었던 도로가 생겨 네비게이션이 헤매기도 한다. 영어건 다이어트건 일주일이면 해결되고, 어디든 “순삭”을 붙여도 어색함이 없다. 몇 번의 터치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격리된 상태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세상의 기능은 빨라 지지만 사람의 기능은 퇴보한다. 오래된 기술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지만 오래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노쇠한 기능이 임계점에 만나는 순간 삶이 버거워진다.
복고주의를 지향하고 레트로 감성을 추구하는 문화 현상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그들에게 숨통이 되기 때문이다. 라라랜드,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유명영화의 OST가 LP로 생산되고 필름 카메라가 다시 각광 받는 이유 역시 속도가 빠진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레트로 감성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때 자전거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콘텐츠로 제작하는 유튜브도 많이 보았는데 하루는 자전거 속도계 리뷰 영상이 올라왔다. 진행자는 여러 제품을 준비해 모양이나 기능 등을 꼼꼼하게 알려주었으며 친절하게 가격까지 비교해주었다. 직접 속도계를 장착하고 달리며 각각의 장단점까지 속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영상 막바지에 진행자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와 박혔다.
“여러분 자전거 타는데 속도계가 진짜 필요하세요? 저야 구독자분들의 요청 때문에 리뷰를 하지만 자전거
타고 빨리 갈 이유가 있나요? 빨리 갈려면 차 타면 되잖아요.”
나는 속도계를 구입하지 않았고 내 자전거 생활에서 “속도”란 단어가 빠져버렸다. 많이 쉬고, 많이 보고, 천천히 달린다. 그러다 보니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물리적 피로감도 훨씬 덜했다.
무엇보다 느리게 타는 것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느림은 더 오랜 시간 자세히 보고 느끼는 성찰의 자세를 갖게 한다. 인생의 후반전에 와 있다면 삶에서 속도를 조금 줄여도 좋을 듯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너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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