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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Jul 11. 2022

원래는 교토여야 했어

ㅣ결혼 20주년의 소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몸무게를 체크하고 달력에 적었다. 앞머리에 헤어롤 감은 큰아이를 등교시키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집에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중부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얼마 전 아내가 후진하다 남의 가게 입간판을 파손시켰는데, 보험처리를 통해 잘 해결되었음을 교통조사계 담당자에게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전에 필요한 볼일을 볼 수 있으니 새삼 시차제 근무의 고마움이 느껴졌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여전히 허리가 불편하다. 하는 수 없이 관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한 달간 쉬겠다고 했다. 마침 오미크론 변이로 코로나19는 새로운 국면을 맡고 있었고 확진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겸사겸사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점심은 전날 제사 지내고 남은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해 먹었다. 야무진 아내는 냉장고 한쪽으로 비빔밥 재료들을 따로 모아놓고 출근했다. 소고기뭇국도 있으니 허연 게 싫으면 끓이면서 고춧가루를 넣으면 된다고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의 흐름이었다. 1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12월인데 별로 춥지는 않았다. 이렇게 2021년 12월 9일이 저물어 갈 때 즈음 오늘이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도, 21도 아닌 딱 20년.      


교토 골목


원래 계획은 교토였다. 입버릇처럼 우리 결혼 20주년에는 교토에 가자고 약속했었다. 생선 굽는 냄새와 하얀 얼굴의 게이샤들을 만날 수 있는 가와라마치의 뒷골목을 아내와 걷고 싶었다. 카모가와 강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교토의 나른한 햇살을 느끼고 싶었다. 생와사비를 직접 갈아 주던 고기덮밥 집도 꼭 함께 가고 싶었다. 교토에 대한 모든 기억을 더듬어 아내에게 보여주고 먹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특별해야 할 결혼 20주년이 여느 12월의 하루일 뿐이었다. 늦은 시간 퇴근했더니 아내가 치킨을 시켜놓고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미 새와 새끼 새 같았다. 묘한 감정이 끌어 올랐다. 미안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다. 무기력한 가장의 자리가 그렇고 엄혹한 현실이 그러했다. 


결혼 20주년이 채 2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 치킨 한 마리와 맥주가 놓인 식탁에 네 가족이 둘러앉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지난 20년을 회자하며 재잘거렸다. 작은 아이는 언니가 스무 살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자기는 몇 주년에 태어났는지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보았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얼굴을 오랜 시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잠들기 전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오늘 우리가 교토에 있었을까?”      


“글쎄 12월엔 집안 행사도 많고, 휴가 내기도 힘들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집안 행사와 당신의 휴가가 힘들어서 교토에 가지 못한 거라 말하고 잠이 들었다. 참 못났다. 원래는 교토여야 했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아내와 교토에 갈 것이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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