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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Jul 12. 2022

마음의 모양

ㅣ바꾸기보단 비슷한 모양을 찾아가야한다.



한일전 ....  !!


이 말 자체로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는 언제나 관심이 집중되는데 그중에서도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지역 예선전 같은 경우는 한정된 본선 티켓을 획득하기 위해 더 치열한 경기가 펼쳐진다. 언젠가 한일전에서 한국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해설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우리가 일본을 이겼습니다. 그러면 사우디와의 경기만 남겨놓은 상황인데요. 사우디는 1차전에서 이미 일본에 한차례 패한 적이 있죠. 그렇지만 축구는 상대적인 거예요. 사우디가 일본에 패했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사우디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겁니다. 다시 제로 상태에서 집중해야됩니다.”      


즉 우리는 일본을 이겼고, 일본은 사우디를 이겼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우리가 이긴 일본에게도 패한 사우디이므로 당연히 우리가 이기는 것이 맞는데, 해설자는 축구는 상대적이라는 이유로 다시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상대적이란 표현에 관심이 생겼다.     


하트모양 퍼즐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이 항상 최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 점심 뭐 먹지?”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 배우자나 직장 같은 중요한 선택까지 삶은 선택과 판단의 연속이다.  


특히 어쩔 수 없이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생업의 현장이라면 철저히 상대적일수록 나의 멘탈을 반듯하게 지켜낼 수 있다. 직장에 오래 머물다 보면 조직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융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서열이나 라인에 편입되어 자기의 모양새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축구처럼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한결 수월해진다. A와 각별하다고 해서 A가 친한 B나 C와 각별할 필요는 없다.      


축구는 90분이면 거의 승부가 나지만 조직 내 인간관계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다. 회사는 사원들의 마음 집합체이다. 하지만 연공서열이나 사규에 의지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이런 권위는 개인보다 집단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     


마음 집합체에 투사의 신념은 사라지고 다듬어진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므로 나의 모양새를 너무 타인들에 맞추어 살려고 애쓰지 말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고 더구나 그럴 필요도 없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된다.


길게 가야 한다면 내 마음의 모양을 바꾸기보단 나와 비슷한 모양을 찾아가는 편이 훨씬 더 향기로울 것이다.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한번 2002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해본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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