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깨끗이 인정하고 물러서는 힘 성숙에 대하여
“그거 버리고 새 치약 써”
이를 닦으려는데 아내가 새 치약을 건넸다. 며칠 전부터 겨우 쥐어짜서 쓰던 치약이 몹시 불편했었다.
그러니 새 치약은 분명 반가움이어야 하는데 아내가 건넨 빵빵한 새 치약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에이 이것도 아직 일주일은 더 쓰겠구만 ... ”
왜 그랬는지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내는 시큰둥하여 “에휴 그럼 그러시든가요,”라며 치약을 놓고 나갔다. 뭣도 아닌 자존심이 묘한 타이밍에 작동되었다. 못나도 한참 못났다. 순간의 자존심이 성숙하지 못한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대가는 혹독했다. 한동안 마른 수건 쥐어짜듯 치약을 짜야 했다.
50에 주짓수를 시작할 때도 자존심과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주짓수는 체력의 상승효과도 있었지만, 정신의 성숙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술은 그렇다 치더라고 체력적인 면에서 도저히 젊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면의 자존심과 끝없이 싸우게 되었다. 분명 가능해 보였는데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이를 먹으면 포기하고 인정하는 힘이 의외로 필요하다.
일단 열심히 부딪혀보고 나의 영역이 아니거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 깨끗이 인정하는 힘이 바로 성숙이다. 이런 성숙은 탄력적으로 살아가는데 추진력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정체성은 지키고 자존심과는 타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빈정거리거나 속 좁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데 남을 칭찬하지 못하게 되면 삶은 서글퍼진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못나서가 아니다.
만약 퇴직 이후 재고용된다면 연봉의 60퍼센트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치자 이런 회사의 제안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 푸대접에 자존심 상해할지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경제적 평가나 연공서열을 따지기보단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면 자존심 따위를 내세울 문제도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존심과 타협해야 한다. 뭣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뾰족 해봐야 자신의 리스크만 키울 뿐dl다. 결국 아내가 건넨 치약으로 양치를 했다. 상쾌했다. 뭣도 아닌 자존심으론 말라비틀어진 치약 하나 짜기도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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