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5시42분 ..... !!
이른 시간이었지만 눈이 떠졌다. 여름이라 밖은 벌써 훤하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지난밤 우리나라 경기도 아닌데 함께 맥주를 마시며 월드컵을 봐주는 의리를 발휘했고 아직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작은 아이는 긴 쿠션을 마치 죽부인처럼 꼭 껴안고 인형들에 둘러싸여 자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삐걱 소리가 날 것 같아 암막 커튼을 조심스럽게 저치고 문 열린 베란다를 통해 살금살금 거실로 빠져나왔다. 큰 아이 방을 들여다보았다. 잉글랜드 국기 모양의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베개 옆으로 흩어진 만화책과 휴대폰이 있었다. 지난밤이 대충 짐작되었다.
TV를 켤까 하다 글을 쓰기로 했다. 우선 커피를 내려야 하는데 원두 가는 소리에 혹시 아내가 깰까 봐 다용도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원두를 갈았다. 이른 새벽, 잠옷 차림으로 다용도실에서 원두를 갈고 있자니 이런 내 모습에 키득 키득 웃음이 나왔다.
여름의 한가운데지만 지난밤 내린 비 때문인지 공기가 서늘한 새벽이었다. 이미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월드컵은 빅 매치만 남겨두고 있었다.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나만의 축제가 끝나가는 느낌이었다. 휴대폰으로 경기일정을 확인하는데 문득 다음 월드컵에는 맥주잔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큰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는구나, 같은 시간의 흐름에도 성장과 노화는 공존하고,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반복되는구나, 축구로 시작된 생각이 철학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내는 한쪽으로 몸을 돌려 자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답답했던지 죽부인 쿠션을 차버리고 만세를 하며 자고 있었다. 너무나 고요한 휴일의 이른 아침, 컴퓨터 부팅 소리마저 신경이 쓰여 노트북에 이어폰을 먼저 꽂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최대한 가족들의 숙면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잘그락거리는 키보드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몰두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나를 바라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아빠 또 글 써? 나는 또 잘 거야.”하고는 쏙 들어가 버렸다. 여름 아침 행복이 코앞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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