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손을 잡고 상대의 체온을 느껴야하는 이유
고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단톡방이 있는데 한동안 많은 소식과 약속들이 오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시큰둥해졌다. “즐거운 명절 보내라” 같은 안부 정도만 간간히 올라올 뿐이었다. 그렇게 온기 없는 단톡방에 누군가 로드 스튜어트의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올렸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영상이어서 짧은 시간이나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옛날 생각난다. 음악이 너무 좋다는 반응이 이어졌는데 대뜸
“그런데 이런 건 어떻게 하냐?”
링크 공유방법이 궁금했던 친구가 뱉은 한마디였다. 이에 다양한 대답들이 오갔다. 단순히 링크 공유하는 것이므로 아주 간단하다는 대답부터, 모르면 애들 시켜라, 꼭 필요하면 주변에 부탁해라. 하물며 이런 것 못해도 먹고사는데 별로 지장없더라. 까지 의견들이 다양했는데 그 모습들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둘러 앉아서 할 이야기들을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카톡의 사라지지 않는 “1”이 신경 쓰이고 “좋아요.”의 개수에 일희일비하게 되었고, 달갑지 않은 이의 친구신청에 한참을 고민하고, 모르는 사람의 생일 알림에 누구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발생하는 오해는 텍스트에 감정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서이다. 오히려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므로 오해가 발생한다. 디지털에서 텍스트는 생각이 빠진 단순한 반응일뿐이다. 이런 폐해는 몇 번의 터치로 감정이 전달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디지털에서 곯아 터진 감정의 폐해는 의외로 아날로그에서 간단하게 해결된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음식을 함께 먹는다거나, 즐겨듣는 음악 이야기를 한다거나, 바뀐 헤어스타일을 눈치챈다거나, 여름 휴가 계획을 공유한다거나, 사소한 행동같지만 필연적으로 서로의 몸짓을 인지하고 눈을 마주치게 된다. 이런 아날로그적 행동에서 훨씬 많은 감정을 정보화시킨다. 손끝에서 나오는 텍스트나 이모티콘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흰머리가 얼마나 늘었는지,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손을 잡고 상대의 체온을 느끼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리적인 진동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소통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편하게 해주지만 삶을 따듯하게 해주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런 건 어떻게 하냐고 묻던 친구는 링크 공유방법을 배웠고 한동안 귀찮을 정도로 많은 영상과 명언들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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