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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Jul 18. 2022

하정우의 하와이, 나의 아늑한 동굴

ㅣ쉼에 관한 생각


 “첫날 도착해서 자고 일어나 일출을 보았다. 그리 신기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 풍광이 혀를 내두를 만큼 빼어난 절경도 아니었다. 그런데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는데, 그 별거 아닌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했다. 태양은 내 등을 포근하게 데워주고, 공기는 꽉 막혔던 나의 혈을 뚫어주는 것 같았다. 《중략》 하와이는 배우 아닌 자연인 하정우가 일상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이자 아늑한 동굴이다.”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중에서 -


이 문장을 읽는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와이 정도면 당연히 최고의 호사 아닌가”와 “나만의 아늑한 동굴은 어디일까?” 였다. 물론 나에게도 최고의 호사이자 아늑한 동굴은 있다. 하와이와는 다소 격차가 있겠지만 나는 동네 사우나에서 가장 큰 안식을 얻는다. 찜질방과 사우나, 헬스클럽으로 이루어진 4층 건물인데 나는 거의 사우나만 이용한다. 몸이 지쳤거나 정신적 휴식이 필요할 때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최적의 장소이다.


사우나


우선 샤워기로 몸을 한번 적시고 안마탕에 들어가 허리와 등에 강한 수압을 맞는다. 그리고 온탕에 몸을 맡기는데 배꼽 정도의 깊이에 몸을 담근다. 처음엔 피부가 따끔거리지만 적응하면 이내 불편한 감각은 사라진다. 15분 정도 지나면 이마에서부터 서서히 온몸으로 땀이 흐른다.     


몸이 어느 정도 노곤해지면 온탕을 빠져나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데 금방 쪄낸 순대처럼 몸에서 김이 술술 피어오르고 몸을 담근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빨간색 경계가 생긴다. 이때 혈관과 세포들은 체온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좁히고 늘리기를 반복하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 순간 몸이 한번 리셋 된다.      


사우나에서 잠을 자는 것도 좋다. 적당한 습도와 따듯한 온기가 잠자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므로 20분 정도 자고나면 머리가 한결 맑아진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몸을 자극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은근히 데워지고 서서히 식히는 방식을 더 좋아한다. 사우나는 단순히 몸만 씻는 공간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맑아지는 공간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낮의 목욕탕과 술」은 목욕탕 탐방기이자 술집가이드 같은 책인데 나처럼 사우나와 술을 즐기는 사람에겐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책이다.      


“밖은 아직 밝고, 사람들은 한창 일하는 시간이겠지 이 시간, 인적이 드문 대중목욕탕에서 혼자 탕을 독자치하며 느긋하게 온 몸을 쭉 뻗는다. 여유롭게 목욕탕을 나선다. 아직 몸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가까운 식당에서 맥주를 쭉욱 들이킨다. 하 이거 너무 좋잖아 《중략》 심지어 아직도 낮이다.” 

                                                                             - 구스미 마사유키 「낮의 목욕탕과 술」 중에서 -     

처음부터 끝까지 목욕과 술에 대한 이야기뿐인데 낮의 목욕탕과 술이야말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는 유쾌한 일탈이자 최고의 호사라는 진심이 느껴진다. 


하정우의 하와이가 그렇고 구스미 마사유키의 목욕 후 즐기는 낮술이 그렇듯 누구나 아늑한 나만의 동굴이 있어야 한다. 휴식은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다. 멈춘 게 아니라 다음 도전을 이어갈 원동력을 만드는 시간이다. 나만의 아늑한 동굴이 그래서 필요하다. 아직도 없다면 사우나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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