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갈팡질팡 치매동반기
그날은 엄마 데이케어센터에서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같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센터의 요청에 참석을 하기로 했다.
센터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네들이 무슨 운동회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센터에 도착을 했다.
입구에 도착을 해서 웃음이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방금 등원시킨 손자의 어린이 집과 입구 풍경이 판박이였다.
예쁜 색지로 꽃을 만들어서 가운데 원 안에 아이의 사진을 넣어서 붙여 놓았는데 데이케어센터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진이 대신 들어가 있었다. 월간 일정과 안내사항이 붙어 있는 것도 같았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마냥 재미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아! 이래서 노치원이라고 하는구나.
가끔은 6살 손자와 팔십 대 후반의 엄마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손자는 무럭무럭 자라는 반면에 엄마는 조금씩 사그라지는 느낌이 다를 뿐.
유치원 앞은 밝은 분위긴데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어두운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아마도 온전히 나의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센터 안에서는 이미 운동회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센터에 다니시는 분들이 스무 명 남짓하고 일하는 분들이 열 분이 넘으니 총 삼십 명이 모두 모여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레크리에이션 하는 분이 진행을 했다. 사과 굴리기, 풍선 굴리기, 줄에 매달은 과자 따먹기.
청군 홍군으로 패를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데 노인네들의 승부욕이 대단했다.
비닐 깔개에 구멍을 뚫은 위에 사과를 놓고 여러 명이 협력해서 사과를 구멍에 빠지지 않게 건너편으로 보내는 게임인데 아홉 분이 서로 균형을 맞춰서 사과를 구멍에 안 빠지게 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했다.
평상시에는 자신도 추스르기 어려운 분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사과가 구멍에 빠지면 함께 낙담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센터의 강당이 열기로 가득했다.
그러니 보는 가족들도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을 하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활기도 넘치고 그래서 더 즐거웠던 운동회였다. 가끔씩 보는 분들인데 운동회 할 때는 전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휠체어나 의자에 앉아 있을 때와는 너무 다른 웃음과 활기가 넘치는 얼굴이 한 분 한 분 싱싱하게 빛났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
정말 단순한 행동, 풍선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골에 넣고 싶다는 마음이 사람을 저렇게 생생하게 만드는구나.
그날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공중에 떠다니는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나에게는 큰 깨닭음이였다.
작은 일상의 행복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치매가 있어서, 거동이 불편해서 힘들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구나.
나는 가끔은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불안해한다.
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 옛날 중국의 기(杞)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딱 내가 그 모양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화가 났나? 내가 뭘 섭섭하게 했나? 기다리다 지쳐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상대방은 아주 명랑하고 해맑다. 공연히 나 혼자 이리저리 고민인 것이다.
심지어 페북에 댓글을 달았다가 지우는 것도 여러 번이다.
모두가 쓸데없는 나 혼자만의 걱정이다.
그 운동회 날 이후 나는 결정했다. 좀 모자라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떠하리.
주어진 나의 현실에서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이다.